다음 학기 동아리 계획을 정해야 했거든. 부장이니까 내가 회의를 열었어.
화이트보드에 크게 썼어. "다음 학기 계획."
그리고 다들 앉혀놓고 물었어. 하고 싶은 거 있냐고.
아무도 말을 안 했어.
진짜 십 분 동안 아무도 말을 안 했어. 다들 폰만 보거나 천장 보거나.
불나방도 조용했어. 평소 같으면 제일 먼저 뭐라도 던지는 애인데.
화이트보드엔 제목만 덩그러니 있었어. 그 밑이 하얗게 비어 있는 게 좀 무섭더라.
불나방 그냥... 지금처럼 하면 안 되냐.
십 분 지나서 불나방이 겨우 한 마디 했어. 그냥 지금처럼 하면 안 되냐고.
다들 고개를 끄덕였어. 그게 진심이었던 거야.
생각해보니까 이해가 되더라. 다들 요새 계좌 생각만으로도 머리가 꽉 차 있는데, 다음 학기 계획까지 생각할 여유가 없는 거잖아.
앞으로를 생각하는 게 지금은 너무 무거운 거라니까.
칼손 다음 학기까지 생각하면 머리 아파.
칼손 말이 맞아. 앞이 잘 안 보일 땐 계획을 세우는 게 제일 어려워.
계획은 앞이 보여야 세우잖아. 근데 다음 주도 어떨지 모르는데 다음 학기를 어떻게 정해.
그래서 다들 입을 다문 거야. 게을러서가 아니라 앞을 보는 게 겁나서.
결국 화이트보드에 한 줄만 썼어. 제목 밑에.
"다음 주에도 모이기."
그게 계획이었어. 다들 웃었어. 근데 그 웃음이 좀 편해 보였어.
다음 학기는 몰라도 다음 주는 알잖아. 다음 주에도 여기 있을 거라는 거. 그거 하나면 됐던 거라니까.
돌부처 그거면 돼.
너도 요새 앞으로 계획을 못 세우겠으면 너무 자책하지 마. 앞이 안 보이는 때가 있는 거거든.
그럴 땐 다음 주 하나만 정해. 동아리방 화이트보드엔 아직 그 한 줄이 있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