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저한테 실망한 것 같네요. 그런데 아무 말도 안 하네요.
답장이 늦어진 것도 아니에요. 길이가 절반으로 줄었습니다.
차라리 화를 내면 나을 것 같더라고요.
화를 내면 무엇 때문인지가 나오고, 그러면 사과를 하든 설명을 하든 할 수 있는걸요. 아무 말이 없으면 그 자리를 제가 짐작으로 채우게 됩니다. 짐작은 끝이 없는걸요.
침묵은 가장 넓은 화면이다. 사람은 거기에 자기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을 비춘다.
제가 붙잡고 있는 근거를 적어보면 별거 아니더라고요.
문장이 짧아졌다, 웃는 게 덜하다, 먼저 말을 안 건다. 이 정도예요. 어느 하나도 확실한 게 아니고요. 그런데 세 개가 모이면 확신처럼 되어버립니다.
그 사람이 그냥 요새 힘들 수도 있어요.
일이 많거나 집에 무슨 일이 있거나요. 저랑 아무 상관 없는 이유가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저는 그 변화를 전부 저한테 붙여서 읽고 있는 셈이군요.
제일 확실한 건 물어보는 거지요.
그런데 그게 제일 어렵습니다. 물어봤다가 아무 일 없다고 하면 제가 예민한 사람이 되고, 진짜 있다고 하면 그 얘기를 마주해야 하겠지요. 둘 다 무서워서 안 묻고 계속 짐작만 합니다.
며칠 붙들고 있다가 결국 짧게 물었는걸요.
혹시 제가 뭐 잘못한 게 있냐고요. 길게 쓰면 부담이 될 것 같아서 한 줄만 보냈습니다. 답이 왔는데 요새 좀 정신이 없었다고 하더라고요. 저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물론 진짜로 실망한 게 맞는 경우도 있겠지요.
그때는 그때대로 들으면 됩니다. 짐작으로 며칠을 보내는 것보다 듣고 며칠 아픈 게 낫더라고요. 적어도 뭘 고칠지는 알게 되네요.
태도가 달라 보인다고 바로 결론을 내리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건 그 사람 사정을 제가 정해버리는 셈이군요. 오늘 누가 달라진 것 같으시다면, 며칠만 결론을 미뤄두셔도 늦지 않은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