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연 언니가 조카한테 들은 걸 물고 왔어요.
강미연 조카 말로는 사람이 안 시켜도 프로그램끼리 알아서 흥정한대요. 그때 쓰는 코인이 페치래요.
미연 언니는 그 말이 실감이 안 나서 행주를 든 채 한참 서 있었대요.
박예슬 프로그램끼리 흥정을 해요? 누구 돈으로요?
알아보니 그리는 그림은 이런 거예요. 내 일을 대신 맡은 인공지능 프로그램이 다른 프로그램과 일을 주고받고, 그 값을 코인으로 치르게 하려는 판인 셈이죠.
부엌으로 옮기면 동네 심부름 센터 같은 거예요. 내가 장보기를 맡기면 심부름꾼이 가는데, 고기는 정육점 심부름꾼한테, 배달은 오토바이 심부름꾼한테 넘기잖아요. 그 사이에 심부름값이 오가는 셈이죠.
페치가 그리는 것도 그거래요. 내 인공지능 심부름꾼이 비행기 표를 알아보다가, 표 파는 쪽 심부름꾼과 직접 흥정하는 거예요. 사람이 일일이 창을 열지 않아도 되는 셈이죠. 편하긴 한데, 내가 안 보는 사이에 일이 오가는 거예요.
박예슬 그럼 그 심부름값은 내 지갑에서 나가는 거예요?
그렇대요. 그래서 내 심부름꾼한테 얼마까지 맡길지를 미리 정해 두는 게 중요하다고 들었어요. 심부름 센터에 장바구니 돈을 넉넉히 맡기면 엉뚱한 걸 사 올 수도 있는 것과 같은 거예요.
강미연 조카 말로는 페치가 다른 인공지능 코인 몇 개랑 합쳤대요. 이름도 새로 하나 만들었대요.
앞서 카이아를 알아본 날에 두 집 장독을 한 장독대로 모았다고 했잖아요. 비슷한 셈이죠. 인공지능 쪽 코인들이 따로 하면 힘이 약하니 한데 모았다고 들었어요. 갖고 있던 걸 정해진 비율로 바꿔 줬대요.
요새 인공지능이라는 말이 붙으면 다들 귀를 세우잖아요. 그런데 프로그램끼리 흥정하는 일이 실제로 얼마나 일어나는지는 또 다른 얘기인 거예요. 이름에 인공지능이 붙은 것과 그게 실제로 쓰이는 건 따로 보는 셈이죠. 얼마나 쓰이는지는 밖에서 알기 어렵대요.
페치는 인공지능 심부름꾼끼리 일을 주고받을 때 쓰려는 코인이라는 것, 그 심부름값은 결국 내 지갑에서 나가니 한도를 정해 둬야 한다는 것, 다른 인공지능 코인들과 합쳤다는 것. 저녁 먹고 나서 알아낸 건 이만큼인 거예요.
우리가 알아낼 수 있는 건 결과가 아니라 태도인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