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연 언니가 뉴스에서 들었다면서 이 얘기를 꺼냈어요.
강미연 코인을 남겨 두고 갔는데 아무도 열쇠를 몰라서 그대로 있다더라고요.
박예슬 서류를 갖춰서 가면 은행처럼 찾을 수 있는 거 아닌가요?
저도 그런 줄 알았어요. 그런데 여기가 은행이랑 아주 다른 자리인 거예요.
앞서 지갑이 뭔지 알아본 날에 지갑 안에 코인이 든 게 아니라 열쇠가 들어 있다는 얘기가 나왔잖아요.
그 열쇠가 있어야 장부에 적힌 걸 움직일 수 있는 거예요. 그런데 장부는 그 열쇠를 든 사람이 누구인지 안 보잖아요. 맞는 열쇠면 열리고 아니면 안 열리는 셈이죠.
그러니까 서류를 아무리 갖춰 가도 내밀 데가 없는 거예요. 비트코인에 왜 주인이 없는지 알아본 날에 전화할 데가 없다는 말이 나왔는데, 여기서도 똑같은 자리인 거예요.
미연 언니가 시어머니 장롱 열쇠를 아무도 몰라서 결국 경첩을 뜯었다고 했어요. 저는 그 말이 오래 남았어요.
장롱은 뜯으면 되잖아요. 금고도 부르면 열어 주는 사람이 있고요. 그런데 이건 뜯을 수가 없는 거예요. 뜯을 자리 자체가 없는 셈이죠.
집문서가 있어도 금고 열쇠가 없으면 못 여는 것과 같은 거예요. 다만 그 금고는 세상 어디에도 몸이 없는 물건인 거고요.
여기가 알아둘 만한 대목인 거예요. 같은 코인이라도 어디에 뒀느냐로 얘기가 완전히 갈리는 셈이죠.
거래소에 두었으면 그 회사가 누구 몫인지 명단을 들고 있잖아요. 코인 살 때 은행 계좌를 왜 하나로 정하라는지 알아본 날에 나온 그 자리예요. 그러면 서류를 갖춰서 절차를 밟을 데가 있다는 거예요. 은행이 코인을 맡아 준다는 얘기도 그 결이고요.
그런데 자기 지갑에 두었으면 그런 명단이 아예 없는 거예요.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으면 장부에 그대로 적힌 채 영영 안 움직이는 셈이죠.
박예슬 그럼 편한 쪽을 고르면 남한테 맡기는 거고, 안 맡기면 이걸 감수하는 거잖아요.
그래서 미리 손을 써 두는 얘기가 나온다고 들었어요.
열쇠를 여러 조각으로 나눠서 여러 사람이 나눠 들게 해 두는 방법이 있대요. 몇 사람이 모여야 열리게 해 두는 거예요. 곗돈 통장을 두 사람 도장이 있어야 열리게 해 두는 것과 같은 거예요.
종이에 적어서 나눠 맡겨 두는 식도 있다더라고요. 다만 어느 쪽이든 대가가 같이 온대요. 알려 두면 그 사람이 언제든 열 수 있게 되는 거잖아요. 아무도 모르면 영영 못 열고, 알려 두면 지금부터 남이 열 수 있는 셈이죠.
이걸 어떻게 볼지는 나라마다 다르대요. 남긴 재산으로 셈해서 적어 내라는 데도 있고 아직 정리가 안 된 데도 있다고 들었어요.
어떻게 하라는 말은 저희가 못 해요. 그건 저희가 다룰 수 있는 범위가 아니잖아요. 다만 은행 통장과 다른 물건이라는 것만은 알고 있어야겠다 싶었어요.
장부는 서류를 안 보고 열쇠만 본다는 것, 그래서 뜯을 자리가 없다는 것, 그리고 거래소에 둔 것과 자기 지갑에 둔 것이 여기서 아주 갈린다는 것. 저녁 먹고 나서 알아낸 건 딱 이만큼인 거예요.
우리가 알아낼 수 있는 건 결과가 아니라 태도인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