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손이랑 같이 하교하는데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가 빨간불이었거든.
근데 칼손이 신호등을 보더니 갑자기 폰을 꺼내더라. 그리고 뭔가 확인하고 다시 넣었어.
뭐 했냐고 물었더니 자기도 모르게 그랬대. 빨간색 보니까 손이 먼저 갔대.
칼손 나 진짜 이상해졌나 봐.
그 얘기 듣고 생각해보니까 전에도 그런 게 있었어.
수업 시간에 칼손이 파란 볼펜으로 필기를 하다가 갑자기 검은 볼펜으로 바꾸더라. 필기 도중에.
그때는 그냥 잉크가 떨어진 줄 알았거든. 근데 물어보니까 파란색이 자꾸 눈에 걸려서 바꿨대.
파란 글씨가 쌓이니까 기분이 가라앉았대. 공부한 건데도.
동아리방에서 그 얘기를 했더니 다들 하나씩 꺼내더라.
불나방은 빨간 옷을 입으면 그날 기분이 좋대. 일부러 빨간 양말을 신고 오는 날도 있대.
돌부처는 파란 하늘을 보면 좀 이상하대. 예쁜데 기분이 묘하대. 원래는 그냥 하늘이었는데.
나는 그 얘기 듣고 좀 웃기면서도 짠했어. 색깔이 다 그 화면이랑 연결돼 버린 거잖아.
불나방 빨간 양말이 효과 있다니까.
생각해보면 원래 빨간색이랑 파란색은 그냥 색깔이었어. 신호등이고 볼펜이고 하늘이고.
근데 매일 그 화면을 보다 보니까 색깔에 마음이 묻어버린 거야. 빨간 걸 보면 들뜨고 파란 걸 보면 가라앉고.
그만큼 거기에 마음을 많이 쓰고 있다는 거라니까. 색깔까지 따라올 정도로.
돌부처가 의외의 방법을 말해줬어. 파란 하늘이 묘하면 구름을 본대.
구름은 하얗잖아. 아무 뜻도 없는 색. 그걸 보면 좀 괜찮아진대.
칼손이 그 말 듣고 다음 날 하얀 볼펜을 샀어. 하얀 볼펜이 어디 있냐고 했더니 하얀 몸통에 검은 잉크래. 몸통이라도 하얗대.
돌부처 아무 뜻 없는 색이 좋아.
너도 요새 어떤 색깔이 자꾸 신경 쓰이면 그건 네 마음이 어디 가 있는지 알려주는 거야. 이상한 게 아니거든.
가끔은 아무 뜻 없는 색을 봐. 구름이라든가 동아리방 하얀 벽이라든가. 거기 늘 있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