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보자는 말에 저는 다음 달쯤이라고 답했습니다.
달력을 본 것도 아니었어요. 보지도 않고 그렇게 말했더군요.
이번 주가 실제로 꽉 차 있는 건 아니었습니다.
비어 있는 날이 있는데도 다음 달이라고 했어요. 그러니 일정 문제는 아니었던 셈이군요.
우리는 시간이 없어서 미루는 것이 아니라, 그때의 자신을 아직 믿지 못해서 미룬다.
이유를 찾아보면 이쪽입니다.
이번 주에 만나면 지금 상태 그대로 나가야 하잖아요. 지금은 좀 지쳐 있고 얼굴도 별로고요. 다음 달쯤이면 좀 나아져 있을 것 같은 겁니다. 나아진 상태로 만나고 싶은 거지요.
문제는 다음 달이 되면 또 비슷하다는 겁니다.
그러면 또 그다음으로 밀게 돼요. 나아진 저를 기다리다가 계절이 지나갑니다. 몇 번 그러다가 연락이 뜸해진 사이도 있고요.
또 하나는 이겁니다.
가까운 약속은 실감이 나는데 먼 약속은 실감이 안 나요. 그래서 마음도 덜 쓰게 되고, 가까워지면 부담이 되어 미루고 싶어집니다. 멀리 잡은 게 오히려 지키기 어려운 셈이군요.
그래서 요즘은 시간을 줄여봅니다.
멀리 잡는 대신 이번 주에 한 시간만 보자고 해요. 한 시간이면 지금 상태로도 나갈 수 있으니까요. 밥을 다 먹고 차까지 마시는 자리는 준비가 필요하지만 커피 한 잔은 그냥 가도 됩니다.
몇 번 해보니 상대는 제 상태를 별로 신경 안 쓰더라고요.
나아진 저를 보러 나오는 게 아니었던 겁니다. 그냥 얼굴을 보러 나온 거였어요. 그걸 알고 나서 날짜가 좀 가까워졌습니다.
오늘 다음 달이라고 말하셨다면, 이번 주에 한 시간만으로 바꿔보셔도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