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리방에서 다 같이 짜장면을 시키기로 했거든. 가위바위보로 칼손이 전화 걸기에 걸렸어.
근데 칼손 얼굴이 하얘지더라. 진짜로.
폰을 꺼내더니 바로 안 걸고 메모장을 열었어. 뭘 적더라.
칼손 잠깐만. 대본 좀 쓰고.
어깨너머로 봤는데 세 줄이었어.
"안녕하세요, 짜장면 네 개요." "주소는 학교 정문 동아리방이요." "감사합니다."
그걸 두 번 소리 내서 읽더니 전화를 걸었어. 대본 그대로 말했어. 한 글자도 안 틀리고.
끊고 나서 칼손이 의자에 털썩 앉더라. 진짜 큰일 하나 끝낸 얼굴로.
나중에 메모장을 봤는데 대본이 여러 개 저장돼 있더라. 병원 예약, 택배 문의, 미용실 예약.
다 세 줄짜리. 다 칼손이 전화 걸기 전에 쓴 거래.
다들 놀랐어. 칼손이 그렇게 전화를 무서워하는 줄 몰랐거든. 평소엔 말 잘하는 애잖아.
불나방 나는 그냥 걸어서 막 말하는데.
칼손한테 왜 무섭냐고 물어봤어.
상대 얼굴이 안 보여서래. 얼굴 보고 말하면 표정으로 알 수 있잖아. 내가 잘 말하고 있는지.
근데 전화는 목소리만 있으니까 상대가 짜증 났는지 괜찮은지 모른대. 그래서 계속 긴장된대.
그리고 말을 틀리면 되돌릴 수가 없잖아. 문자는 지우고 다시 쓰면 되는데.
듣다 보니까 그건 겁이 많은 게 아니라 마음을 많이 쓰는 거였어.
상대가 불편하지 않을까, 내가 실수하지 않을까. 그걸 다 생각하니까 무서운 거잖아.
아무 생각 없이 거는 불나방이랑은 다른 거야. 칼손은 전화 한 통에도 상대를 생각하는 거라니까.
돌부처 나도 대본 써.
돌부처도 쓴대. 근데 돌부처 대본은 한 줄이래. "네."
그날 이후로 우리 방에선 전화 걸 일 있으면 대본을 같이 써줘. 세 줄짜리.
너도 전화가 무서우면 대본 써도 돼. 그거 하나도 안 이상하거든. 동아리방 메모장엔 대본이 많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