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많이 오던 밤이었어요. 저녁을 차릴 기운이 없어서 배달을 시켰지요.
초인종이 울려 문을 여니 라이더 한 분이 서 계셨어요. 봉투를 건네시는데 봉투는 바짝 말라 있었고, 그분 소매 끝에서는 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네요.
봉투가 비닐로 두 겹 싸여 있었어요.
음식이 젖지 않게 따로 챙기신 거겠지요. 정작 본인은 우비를 입었는데도 다 젖어 계셨고요. 그 차이가 이상하게 오래 눈에 남더라고요.
며칠 전 라디오 뉴스에서 빗길 배달 얘기가 나왔었어요.
비 오는 날엔 주문이 늘고, 그만큼 라이더들이 미끄러운 길을 더 많이 달린다는 얘기였지요. 안전에 주의해야 한다는 당부도 있었고요. 그때는 그냥 흘려들었는데, 문 앞에 선 젖은 소매를 보니 그 얘기가 다시 떠올랐네요.
비 오는 밤의 따뜻한 저녁 뒤에는, 그 비를 대신 맞은 누군가가 있다.
봉투를 받으면서 조금 미안했어요.
제가 비 맞기 싫어서 시킨 저녁인데, 그 비를 다른 사람이 대신 맞은 거니까요. 그렇다고 시키지 말아야 하나 생각하면 그것도 아닌 것 같고요. 그분들에게는 그게 일이니까요. 그 사이 어딘가에서 마음이 머뭇거리더라고요.
그래서 봉투를 받으며 한마디를 했어요.
비 많이 오는데 조심히 가세요, 하고요. 그분이 잠깐 놀란 얼굴을 하시더니 고개를 숙이셨지요. 감사합니다, 짧게 대답하고 계단을 내려가셨어요. 그 뒷모습이 빗속으로 사라지는 걸 창문으로 봤네요.
다음 날 엘리베이터에 쪽지가 하나 붙어 있었어요.
옆 동 이웃이 쓴 거였는데, 비 오는 날 배달 기사님들 쓰시라고 경비실 앞에 수건을 걸어두었다는 내용이었지요. 저와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 또 있었던 거군요.
비 오는 밤에 문 앞까지 와주는 사람들이 있지요.
그분들의 비를 대신 맞아드릴 수는 없겠지요. 그래도 짧은 인사 하나는 건넬 수 있어요. 그 한마디가 그 밤을 아주 조금 덜 차갑게 해주는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