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만난 사람이 예전 얘기를 하네요. 제가 그때 뭘 해줬다고요.
저는 그 장면이 전혀 기억나지 않았는걸요.
기억 안 난다고 하면 그 사람 기억을 지우는 것 같아요.
그렇다고 그런 일이 있었다고 맞장구를 치기도 좀 그렇고요. 저는 그 자리에서 애매하게 웃고 넘어갔어요. 그러고 집에 와서 계속 그 장면을 찾아봤는데 안 나오네요.
우리는 자기가 준 것은 잊고, 받은 것만 오래 기억한다. 그래서 누구나 남에게는 조금 더 좋은 사람으로 남는다.
좋게 기억해준다는데 왜 부담인가 생각해봤어요.
그 사람 머릿속에는 제가 그때 모습으로 멈춰 있네요. 지금 저는 그때만큼 못 해줄 수도 있고요. 그러면 그 기억을 유지하려고 애쓰게 되는걸요. 기대치가 미리 정해져 있는 셈이군요.
그래서 그 사람 앞에서는 조금 더 애쓰게 되더라고요.
지금 만나서 시시하면 그 기억까지 같이 흐려질까 봐서요. 아무도 그러라고 안 했는데 혼자 그러고 있어요. 좋게 기억해준 값을 제가 치르는 겁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더라고요.
제가 기억을 못 해도 그 사람한테는 있었던 일인걸요. 제 쪽에서 사소해서 안 남은 것뿐이고요. 큰일이었는지 아닌지는 받은 쪽이 정하는 거겠지요.
요즘은 정정하지 않게 되네요.
기억이 잘 안 난다고 말하면 그 사람 몫을 깎는 것 같아서요. 대신 그런 일이 있었냐고 되묻고 얘기를 더 듣습니다. 듣다 보면 흐릿하게 떠오를 때도 있고요.
반대쪽도 있더라고요.
제가 오래 고맙게 기억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쪽은 아마 그 일을 모를 겁니다. 몇 년 전에 지나가듯 해준 거였으니까요. 그러니 저도 누군가한테는 좋게 멈춰 있는 셈이겠지요.
지금 제 모습과는 좀 다르겠지요.
그래도 그 사람이 기억하는 것도 그날의 저이긴 한걸요. 오늘 누가 나를 너무 좋게 기억하고 있어서 난감하셨다면, 정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