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손은 늘 괜찮다고 했거든. 누가 물어보면 무조건.
근데 그 괜찮다는 거짓말일 때가 많았어. 우유팩 찌그러뜨리면서 괜찮다고 하고, 볼펜으로 손바닥에 점 찍으면서 괜찮다고 하고.
다들 칼손의 괜찮다를 안 믿게 됐어. 손을 보면 다 알았으니까.
그날도 내가 물어봤어. 요새 어떠냐고. 습관처럼.
칼손이 그러더라. "괜찮아."
나는 또 손을 봤어. 근데 손에 아무것도 없었어.
우유팩도, 볼펜도, 모래시계도. 손이 그냥 무릎 위에 편하게 놓여 있었어.
칼손 진짜로. 이번엔 진짜 괜찮아.
칼손한테 물어봤어. 뭐가 달라졌냐고.
칼손이 좀 생각하더니 그러더라. 딱히 뭐가 좋아진 건 아니래. 계좌도 그대로래.
근데 요새 마음이 좀 가벼워졌대. 일곱 번 참은 날 이후로. 먼저 안 나가도 괜찮다는 걸 알고 나서.
그리고 다들 옆에 있다는 걸 알고 나서. 아플 때 찾아와 주고, 키링 같이 찾아주고.
생각해보면 칼손 상황은 하나도 안 바뀌었어. 처음 동아리방 왔을 때랑 똑같아.
근데 칼손 마음이 바뀐 거야. 같은 상황인데 버틸 수 있게 된 거라니까.
괜찮아진다는 게 상황이 좋아지는 게 아니라, 같은 상황을 버틸 힘이 생기는 거였어.
불나방 칼손 진짜 괜찮아 보인다.
불나방도 알아봤어. 돌부처도, 후배도.
칼손 손이 비어 있다는 거. 그게 진짜 괜찮다는 신호라는 거.
다들 박수를 쳤어. 좀 오버였지만. 칼손이 얼굴이 빨개졌어.
돌부처 손 비었네.
생각해보면 불안할 때 다들 뭘 쥐잖아. 핫팩, 모래시계, 키링.
손이 비어 있다는 건 쥘 게 필요 없다는 거야. 그만큼 마음이 안정됐다는 거라니까.
칼손은 그날 하루 종일 손이 비어 있었어. 모래시계는 필통에 넣어두고 안 꺼냈어.
너도 지금 괜찮다고 말하면서 손에 뭘 꽉 쥐고 있으면 아직 괜찮지 않은 거야. 그것도 괜찮아.
언젠가 손이 비어 있는 날이 올 거라니까. 칼손도 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