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날은 문 열자마자 알거든. 동아리방이 조용하니까.
평소엔 문 열면 누가 떠들고 있어. 그날은 다들 폰만 보고 있더라.
인사해도 대답이 반 박자 늦게 와. 그게 파란 날이라니까.
불나방 괜찮아. 이런 날도 있는 거지.
웃긴 게 있어. 그런 날은 과자가 제일 빨리 없어지더라.
책상 위에 과자 봉지를 늘 두는데 파란 날엔 점심 전에 다 비어. 평소엔 저녁까지 남거든.
말은 안 하는데 손은 계속 움직이는 거야. 입이 심심한 게 아니라 마음이 심심한 거잖아.
그리고 빈 봉지를 아무도 안 버려. 그냥 책상에 쌓여 있더라.
왜 말이 줄어드는지 칼손한테 물어봤거든. 걔가 그러더라. 말하면 진짜가 될 것 같대.
머릿속에만 있으면 아직 괜찮은 척할 수 있잖아. 입 밖에 내는 순간 인정하는 거고.
그래서 다들 입을 닫는 거야. 누가 먼저 꺼내면 다 같이 무너질 것 같으니까.
돌부처 말 안 해도 다 알아.
근데 나는 그 조용함이 싫진 않아. 다들 같은 걸 견디고 있다는 게 느껴지거든.
혼자 폰 보면서 견디는 거랑 같은 방에서 견디는 거랑은 다르잖아. 옆에서 과자 부스럭거리는 소리만 들려도 덜 외롭다니까.
돌부처 말대로 말 안 해도 다 알아. 그게 이 방이 있는 이유긴 해.
그런 날 내가 하는 건 딱 두 개야. 과자 봉지 하나 더 뜯어놓기, 그리고 빈 봉지 치우기.
뭘 물어보지도 않고 괜찮냐고도 안 해. 그냥 책상을 다시 채워놓는 거거든.
저녁쯤 되면 누가 먼저 딴 얘기를 꺼내. 그러면 그날은 넘어간 거야.
너도 파란 날에 말이 없어졌으면 억지로 떠들 필요 없어. 조용한 것도 버티는 방법이라니까.
돈은 몰라도 옆자리는 채워줄 수 있거든. 동아리방은 조용한 날에도 안 닫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