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지하철 승강장에서 열차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휴대폰 배터리가 거의 없어서 그냥 서 있었지요.
눈앞 스크린도어에 시 한 편이 적혀 있었어요. 매일 그 앞에 섰는데 처음 읽어보는 거였네요. 얼마 전 뉴스에서 역마다 스크린도어 시가 새로 바뀐다는 얘기를 들은 게 생각났어요.
짧은 시였어요.
퇴근길 사람들의 어깨에 대한 시였지요. 무거운 가방을 메고 집으로 가는 어깨들이요. 한 줄 한 줄 읽다 보니 제 어깨가 생각났어요. 시인이 저를 보고 쓴 것 같았네요.
마지막 두 줄을 읽으려는 순간 열차가 들어왔어요.
스크린도어가 열리면서 시가 옆으로 밀려 사라졌지요. 옆에 서 있던 학생도 아쉬운 듯 아, 하고 작게 소리 냈어요. 둘 다 같은 시를 읽고 있었던 거예요. 눈이 마주쳐서 서로 조금 웃었네요.
열차를 기다리는 몇 분에도, 모르는 사람과 같은 시 한 편을 나눠 읽을 수 있다.
다음 날 같은 자리에 섰어요.
이번엔 일부러 일찍 와서 마지막 두 줄까지 다 읽었지요. 그 어깨들이 집에 도착하면 누군가 가방을 받아준다는 내용이었어요. 그걸 읽고 나니 마음이 따뜻해졌어요.
생각해보면 승강장에서 늘 휴대폰만 봤어요.
몇 분 안 되는 시간에도 뭔가를 확인하고 있었지요. 그래서 바로 앞에 있는 시를 몇 년 동안 못 봤던 거예요. 배터리가 없던 날 덕분에 처음 읽게 된 셈이네요.
며칠 뒤 승강장에서 그 학생을 또 봤어요.
학생도 그 스크린도어 앞에 서 있었지요. 저를 알아보고 작게 고개를 숙였어요. 저도 고개를 숙였고요. 시 한 편으로 생긴 작은 인연이었어요.
쇼펜하우어는 시와 음악 같은 예술이 잠깐 사람을 괴로움에서 쉬게 한다고 했대요.
승강장의 그 몇 분이 딱 그랬어요. 열차를 기다리는 지루한 시간이 시 한 편으로 다른 시간이 되었으니까 그랬겠지요.
열차를 기다리는 몇 분에도 시 한 편이 건너올 수 있는 것 같아요.
오늘은 휴대폰 대신 스크린도어 앞 글자를 한 번 읽어봐도 좋겠는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