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 생활용품 코너를 지나다 멈췄어요. 진열대에 분홍색 돼지 저금통이 줄지어 있었지요.
저도 모르게 하나를 들어 흔들어봤어요. 당연히 아무 소리도 안 났지요. 빈 저금통이었으니까요. 혼자 멋쩍게 웃었네요.
어릴 때 저도 돼지 저금통이 있었어요.
할머니가 사주신 거였지요. 용돈을 받으면 동전을 하나씩 넣었어요. 짤랑, 하고 떨어지는 소리가 좋았어요. 가끔 저금통을 들어 흔들어보며 얼마나 찼는지 가늠했지요. 소리가 묵직해질수록 마음도 든든해졌네요.
저금통이 꽉 차면 배를 갈라야 했어요.
그게 제일 아까웠지요. 정든 돼지의 배를 가르는 거였으니 더 그랬겠지요. 엄마가 칼로 조심스럽게 뜯어주셨어요. 쏟아진 동전을 방바닥에 펼쳐놓고 하나씩 셌고요. 그 동전으로 산 건 기억이 잘 안 나는데 세던 시간은 또렷해요.
동전 하나씩 떨어지던 소리에는, 기다림을 견디는 작은 즐거움이 담겨 있었다.
생각해보면 저금통은 기다리는 법을 알려줬어요.
바로 쓰지 않고 모아두는 거요. 동전 하나로는 아무것도 못 사지만 모이면 뭔가가 되지요. 그 기다림이 지루하지 않았던 건 짤랑 소리 덕분이었던 것 같아요.
요즘은 동전을 거의 안 써요.
다 카드로 계산하게 됐더라고요. 동전이 떨어지는 소리를 들을 일도 없어졌지요. 그러고 보니 무언가를 천천히 모으는 일도 줄었어요. 다 바로바로 결과가 나오는 것들뿐이네요.
그날 결국 저금통 하나를 사 왔어요.
창가에 올려두고 지갑 속 동전 몇 개를 넣었지요. 짤랑 소리가 났어요. 오랜만에 들으니 반가웠어요. 뭘 사려고 모으는 건 아니에요. 그냥 그 소리를 다시 듣고 싶었어요.
쇼펜하우어는 무언가를 기다리는 동안이 오히려 더 즐겁다고 했대요.
저금통이 딱 그런 물건 같아요. 다 채우는 날보다 하나씩 넣는 날들이 더 좋았던걸요.
동전 하나씩 떨어지던 소리에는 기다림을 견디는 작은 즐거움이 있었던 것 같아요.
오늘은 작은 것 하나를 천천히 모아보기 시작해봐도 좋겠는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