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손이 요새 모래시계를 잘 안 꺼내거든. 필통에 넣어두고.
손이 비어 있는 날이 많아졌대. 진짜 괜찮다고 말한 날 이후로.
그러다 칼손이 후배가 시험 기간에 엄청 초조해하는 걸 봤어. 반 등수 때문에.
칼손이 필통에서 파란 모래시계를 꺼냈어.
그리고 건네기 전에 한 번 뒤집었어. 모래가 떨어지는 걸 끝까지 봤어. 다 떨어질 때까지.
다 떨어지고 나서 후배한테 줬어.
칼손 이거 너 써. 나는 이제 괜찮아.
불나방이 그거 보고 좀 묘한 표정을 지었어. 자기가 칼손한테 준 거니까.
칼손이 불나방한테 그랬어. 이거 덕분에 버텼다고. 근데 이제 후배가 버틸 차례라고.
불나방이 그 말 듣고 웃었어. 그리고 그러더라. 그럼 그거 계속 돌려쓰자고. 필요한 사람한테.
생각해보면 칼손한테 모래시계는 버팀목이었잖아. 열고 싶을 때 기다리게 해주는 거.
근데 이제 칼손은 그게 없어도 버틸 수 있게 된 거야. 다 쓴 거지.
그 다 쓴 버팀목이 후배한테는 처음 쥐는 버팀목이 되는 거라니까. 같은 모래시계인데.
돌부처 선인장도 그래. 나중에 후배 줄 거야.
후배가 그날부터 모래시계를 썼어. 등수 생각날 때 뒤집고.
며칠 뒤에 후배가 그러더라. 모래 떨어지는 거 보면 좀 가라앉는대.
그리고 하나 더. 칼손 선배가 이걸로 버텼다고 생각하면 자기도 버틸 수 있을 것 같대.
칼손이 그 말 듣고 좀 울컥했어.
그러니까 모래시계를 물려준 게 아니라 버틴 마음을 물려준 거였어.
불나방이 칼손 걱정해서 사준 마음, 칼손이 그걸로 버틴 마음, 이제 후배가 그 마음을 쥐고 있는 거야.
너도 이제 필요 없어진 버팀목이 있으면 버리지 말고 필요한 사람한테 물려줘봐.
네가 버틴 마음까지 같이 갈 거라니까. 파란 모래시계는 이제 후배 필통에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