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밤에 전화를 해서 자기 실수를 먼저 말하네요. 제가 아직 모르고 있던 일이었어요.
미안하다고 하고 나서 설명을 안 붙이더라고요.
보통은 왜 그렇게 됐는지가 따라오는걸요.
바빴다거나 착각했다거나요. 그런데 그 친구는 그걸 안 했어요. 그냥 자기가 잘못했다고만 하고 끝내더라고요. 그게 좀 낯설면서 편했고요.
이유를 붙이지 않는 사과는 상대에게 판단할 거리를 남기지 않는다.
한 가지 더 인상적인 게 있었어요.
말하고 나서 제가 뭐라고 하기를 기다리지 않고 바로 다음 얘기로 넘어갔어요. 용서를 받아내려는 자리로 안 만든 거지요. 알려야 해서 알린 거고 그걸로 끝이었고요.
저는 실수를 말할 때 이유부터 나가는걸요.
그날 상황이 이랬다고 먼저 깔고요. 그러면 듣는 쪽은 사과를 받는 게 아니라 설명을 듣게 되겠지요. 제 딴에는 정직하게 말한 건데 도착하는 건 다릅니다.
왜 이유를 붙이나 보면 혼자 지기 싫어서인 것 같아요.
사정이 있었다고 해두면 잘못이 조금은 상황 쪽으로 넘어가니까요. 그 친구는 그걸 안 하고 다 가져간 셈이고요. 그러려면 배짱이 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하면 그 일이 빨리 끝나더라고요.
저도 길게 말할 게 없었네요. 알겠다고 하고 다른 얘기를 했지요. 설명이 길면 그만큼 그 자리도 길어지는데 그게 없었던 거지요.
며칠 뒤에 제가 실수한 게 있어서 그렇게 해봤어요.
이유를 안 붙이고 잘못했다고만 했습니다. 말하고 나서 침묵이 몇 초 있었는데 그게 꽤 길게 느껴졌고요. 그 몇 초를 못 견뎌서 이유를 붙이게 되는 거였네요.
참고 기다리니까 상대가 알겠다고 하고 넘어갔습니다. 몇 초면 되는 일이었고요.
설명을 안 붙이는 데는 그만큼의 용기가 드는걸요.
그래서 저는 그 밤에 그 친구가 좀 커 보였습니다. 오늘 실수를 말할 일이 있으시면, 이유는 나중에 물어보면 그때 하셔도 되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