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버스에서 옆에 선 학생의 샴푸 냄새를 맡았어요. 순간 고등학교 도서관이 떠오르더라고요.
그 시절 도서관에서 늘 제 옆자리에 앉던 아이가 있었어요. 그 애는 매번 제 파란 형광펜을 빌려 갔지요. 그 형광펜이 갑자기 선명하게 떠올랐네요.
그 애를 오래 좋아했어요.
일 년이 넘도록요. 그런데 한 번도 말하지 못했지요. 형광펜을 빌려줄 때 손끝이 스치면 그날 하루가 다 좋았어요. 그게 제가 할 수 있는 전부였네요.
생각해보면 무서웠던 것 같아요.
말했다가 그 옆자리마저 잃을까 봐서요. 고백하지 않으면 적어도 매일 옆에 앉을 수는 있었으니까요. 그 작은 행복을 지키고 싶었던 거겠지요.
고백하지 못한 마음은, 잃고 싶지 않은 것이 너무 컸던 마음이다.
졸업식 날 그 애가 다가왔어요.
형광펜 고마웠다고, 이거 돌려줄게 하며 파란 형광펜 하나를 내밀었지요. 제 것이 아니라 새것이었어요. 그 애도 뭔가 말하려는 것 같았는데 친구들이 부르는 바람에 그냥 헤어졌네요. 그게 마지막이었어요.
그 새 형광펜은 한참 동안 필통에 있었어요.
아까워서 쓰지도 못했지요. 이사를 몇 번 하면서 어디론가 사라졌고요. 그래도 그 파란색은 아직 기억나요. 그 애가 내밀던 손의 모양도요.
지금 생각하면 후회라기보다 아련해요.
말했다면 어땠을까 궁금하긴 하지요. 그런데 그 마음 덕분에 그 시절이 반짝였던 것도 맞아요. 지루한 자습 시간도, 시험 기간도 그 옆자리 때문에 견딜 만했으니까요.
얼마 전 고등학교 친구와 만났을 때 그 얘기를 처음 꺼냈어요.
친구가 깜짝 놀라더니 웃었지요. 그때 다들 눈치챘었다고, 너만 모르는 줄 알았다고요. 제 마음이 그렇게 티가 났었나 봐요. 민망하면서도 이상하게 마음이 가벼워졌네요.
전하지 못한 마음도 그 시절의 나를 따뜻하게 해줬어요.
이제는 그 기억을 조용히 고마워하기만 해도 괜찮은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