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쓰던 걸 물려주겠다고 하네요. 자기는 이제 안 쓴다고요.
받아보니 그 친구가 붙여뒀던 스티커 자국이 남아 있더라고요.
새것을 사주겠다고 했으면 거절하기가 쉬웠겠지요.
쓰던 거니까 부담이 덜할 것 같은데 오히려 더 어렵더라고요. 그 사람이 쓰던 시간이 같이 오는 거고요. 값으로는 작은데 무게로는 안 작은 셈이군요.
쓰던 물건에는 값 대신 시간이 붙어 있다. 그래서 받는 쪽이 더 조심스러워진다.
이제 안 쓴다고만 했어요.
왜 안 쓰게 됐는지는 안 물었는걸요. 사정이 있었을 테고 그건 그 친구 몫이겠지요. 물어보면 설명을 만들어야 하겠고요.
받고 나서 뭘 해야 하나 며칠 생각했어요.
돈을 주자니 그건 아니고, 다른 걸 사서 주자니 갚는 티가 나고요. 결국 잘 쓰는 게 맞겠다 싶더라고요. 안 쓰고 두면 그 친구가 준 시간까지 그냥 놓이는 셈이고요.
스티커 자국은 그냥 뒀네요.
지우려면 지울 수 있는데 안 지웠어요. 그게 있어야 이게 어디서 온 건지가 남는걸요. 쓸 때마다 한 번씩 보입니다.
제가 안 쓰게 되면 또 누구한테 넘기게 될 것 같아요.
그때는 자국이 두 개가 되겠고요. 물건 하나가 사람 몇을 건너가는 셈이네요. 그렇게 보면 버리는 것보다 나은 방식인 것 같습니다.
사실 받을 때 한 번 거절했어요.
괜찮다고, 그냥 두시라고요. 그랬더니 그 친구가 안 쓰면 버리게 된다고 하더라고요. 그 말을 듣고 나서야 받았습니다.
거절이 예의인 줄 알았는데 그 자리에서는 받는 게 예의였던 셈이네요.
쓰던 걸 건네는 건 물건만 주는 게 아닌걸요.
받는 쪽이 조심스러워지는 것도 그래서겠지요. 오늘 누가 쓰던 걸 건네주셨다면, 잘 쓰시는 게 제일 좋은 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