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샤워하고 나오셨는데 팔이 아프다고 하셨거든. 그래서 내가 머리를 말려드렸어.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리는데 머리카락 사이로 하얀 게 보이더라.
흰머리였어. 한두 개가 아니었어. 정수리 쪽에 꽤 많았어.
처음 봤어. 엄마 흰머리.
엄마가 눈치채셨는지 그러셨어. 흰머리 보이면 뽑아달라고.
근데 못 뽑겠더라. 손이 안 갔어.
그냥 드라이기만 계속 돌렸어. 엄마 머리가 다 말랐는데도.
엄마가 왜 안 뽑냐고 하셨어. 나는 그냥 많아서 못 뽑겠다고 했어. 진짜 이유는 말 못 했어.
진짜 이유는 그 흰머리가 엄마 걱정 같아서였어.
요새 아빠 일 때문에 엄마가 신경 많이 쓰시는 거 알거든. 할머니 걱정, 삼촌 걱정, 내 걱정까지.
그 걱정들이 다 머리에 하얗게 내려앉은 것 같았어. 그걸 뽑으면 엄마 걱정을 모른 척하는 것 같아서.
다음 날 동아리방에서 그 얘기를 했어. 다들 조용히 들었어.
칼손도 그런 적 있대. 아빠 흰머리 보고 좀 울었대.
불나방은 엄마 손등에 주름 생긴 거 보고 놀랐대. 늘 엄마는 그대로인 줄 알았대.
불나방 엄마도 나이 드는 거 처음 알았어.
돌부처는 할머니 손 생각이 난대. 할머니 손은 원래 주름이 있었는데 엄마 손도 언젠가 그렇게 되겠지, 하고.
그날 이후로 엄마 걱정이 좀 더 보이기 시작했어.
엄마가 설거지하다가 멈추실 때, 전화 끊고 한숨 쉬실 때, 행주 접었다 폈다 하실 때.
예전엔 몰랐던 게 보여. 흰머리가 알려준 거야.
칼손 그럼 이제 네가 엄마 옆에 있어 드려.
그 주말에 엄마 머리를 또 말려드렸어. 이번엔 흰머리 하나 뽑아드렸어. 엄마가 고맙다고 하셨어.
너도 부모님 나이 드신 게 느껴지면 그 마음 그대로 가져가. 그리고 머리 한번 말려드려. 그거면 된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