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전부터 친구들과 소풍을 잡아뒀어요. 전날 밤에 도시락 재료까지 다 사다 놨지요.
그런데 아침에 눈을 뜨니 창밖에 비가 쏟아지고 있더라고요. 식탁 위에 재료만 그대로 놓여 있었네요.
비는 누구 잘못도 아니지요.
날을 잡은 친구 잘못도 아니고, 일기예보 잘못도 아니고요. 그런데 이상하게 탓할 데가 없으니까 더 답답하네요. 누구라도 원망할 수 있으면 속이 좀 풀릴 것 같았어요.
그날 오전 내내 저는 괜히 탓할 곳을 찾고 있었어요.
좀 더 일찍 날씨를 확인했으면 어땠을까, 다른 날로 잡자고 했어야 했나, 하고요. 결국 화살이 저한테 돌아오더라고요. 탓할 데가 없으면 사람은 자기를 탓하게 되는 모양이에요.
탓할 데가 없는 슬픔은, 가장 가까운 곳인 나에게로 돌아온다.
오후쯤 친구 하나가 전화를 했어요.
많이 아쉽다고, 근데 누구 탓도 아니니까 그냥 아쉬워하자고 하더라고요. 그 말이 이상하게 위로가 됐어요. 이유를 찾지 않아도 속상할 수 있다는 걸 허락받은 느낌이었지요.
생각해보면 살면서 겪는 속상함의 꽤 많은 부분이 그렇군요.
갑자기 아픈 몸, 어긋난 타이밍, 이유 없이 멀어진 사이 같은 것들이요. 쇼펜하우어가 세상은 원래 우리 뜻대로 되지 않게 생겼다고 했던 게 이런 거겠지요. 누군가의 잘못이 아니라, 그냥 세상이 그렇게 흘러가는 거고요.
그날 저녁 저는 사다 둔 재료로 도시락을 쌌어요.
소풍은 못 갔지만 거실 바닥에 돗자리를 깔고 혼자 먹었지요. 창밖엔 여전히 비가 왔고요. 조금 우스웠는데 빗소리를 들으며 먹는 김밥이 생각보다 맛있더라고요.
누구 탓도 아닌 일 앞에서는 그냥 아쉬워하면 되는 것 같아요.
탓할 사람을 만들면 잠깐 시원하지만 오래 남네요. 탓하지 않고 속상해하면 조금 오래 걸려도 깨끗하게 지나가고요. 비가 그치면 다시 날을 잡으면 되는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