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출근해서 모니터를 켜면 한숨부터 나와요. 어제와 같은 서류, 같은 확인, 같은 회신이 기다리고 있지요.
이걸 왜 하고 있나 싶은 날이 몇 주째 이어졌어요. 일이 싫다기보다는 손에 아무것도 남지 않는 느낌이었네요.
제 일은 끝이 잘 안 보여요.
하나를 처리하면 다음 게 오지요. 다 처리했다는 순간이 없어요. 그러니 오늘 뭘 했는지 돌아봐도 잘 떠오르지 않더라고요. 바빴던 건 확실한데 무엇을 했는지는 흐릿하군요.
쇼펜하우어는 사람의 하루를 같은 자리를 도는 바퀴에 빗대기도 했대요.
처음 읽었을 땐 너무 쓸쓸한 비유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요즘 제 하루가 딱 그렇더라고요. 그런데 이상하게 그 말을 읽고 나니 조금 덜 외로웠어요. 다들 그 바퀴 위에 있다는 뜻이기도 하니까요.
보람이 없는 날이 이어지는 건, 내가 잘못 살아서가 아니라 대개의 일이 원래 그렇게 생겨서다.
며칠 전 서랍을 정리하다 쪽지 하나를 발견했어요.
석 달 전 처리한 서류에 거래처 담당자가 연필로 적어 돌려보낸 거였지요. 덕분에 빨리 해결됐어요, 하고요. 받았을 땐 바빠서 그냥 서랍에 넣어뒀던 거예요. 다시 읽으니 그날 일이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됐다는 게 보이더라고요.
그 쪽지를 보면서 알게 됐어요.
보람은 일을 하는 순간에는 잘 안 보이는 것 같아요. 대개 한참 뒤에, 엉뚱한 데서 발견되지요. 제 손에 아무것도 안 남는 것 같았던 날들도 어딘가에는 조금씩 남아 있었던 거군요.
그날 오후에 옆 팀 동료가 부탁한 자료를 보내면서 한 줄을 덧붙였어요.
지난번에 도와주셔서 고마웠어요, 하고요. 동료가 답장으로 웃는 얼굴을 보냈네요. 제가 받은 쪽지처럼 그 한 줄도 누군가의 서랍에 들어가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보람이 안 느껴지는 시기는 누구에게나 오겠지요.
그럴 때 억지로 의욕을 내려고 하면 더 지치더라고요. 보람은 매일 오는 게 아니라 가끔 서랍 안쪽에서 발견되는 거니까요. 오늘이 그 날이 아니어도 괜찮은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