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진땀을 흘리며 깼어요. 꿈에서 시험을 보고 있었지요.
시험지를 받았는데 글자가 하나도 안 보였어요. 시간은 흘러가는데 아무것도 쓸 수 없었고요. 깨어보니 베개 옆에 펴둔 채 잠든 책이 얼굴 쪽으로 넘어와 있었네요.
아침이 돼도 그 꿈이 남아 있었어요.
씻고 옷을 입는 동안에도 가슴 한쪽이 조마조마했지요. 꿈인 걸 아는데도 몸은 아직 그 시험장에 있는 것 같았어요. 출근길 버스에서도 그 백지 시험지가 자꾸 떠올랐어요.
생각해보면 요즘 일이 좀 밀려 있었어요.
마감이 다가오는 보고서가 있었지요. 아마 그 부담이 꿈으로 나온 거겠지요. 낮에 애써 모른 척하던 걱정이 밤에 모양을 바꿔 찾아온 거였군요.
낮에 모른 척한 걱정은, 밤이 되면 다른 얼굴을 하고 꿈속으로 찾아온다.
회사에 도착해서 창가 쪽으로 가서 창문을 조금 열었어요.
찬 바람이 들어왔지요. 그 바람을 맞으니 꿈이 조금씩 흐려지더라고요. 진짜 바람이 꿈속 공기를 밀어내는 것 같았어요. 숨을 몇 번 크게 쉬었네요.
점심때 옆자리 동료에게 꿈 얘기를 했어요.
동료도 시험 보는 꿈을 자주 꾼대요. 졸업한 지 몇 년이 지났는데도요. 다들 그런 꿈 하나쯤은 갖고 사나 봐요. 그 얘기를 하고 나니 꿈이 한결 가벼워졌지요. 말로 꺼내니까 별것 아닌 게 됐어요.
그날 밤엔 자기 전에 책을 덮어 머리맡 멀리 두었어요.
혹시 그 책이 꿈을 불러온 건 아닐까 싶어서요. 대신 따뜻한 보리차 한 잔을 마시고 누웠지요. 다행히 그날은 아무 꿈도 꾸지 않았어요. 아침에 개운하게 일어나니 전날의 시험지가 아주 먼 일처럼 느껴지더라고요.
쇼펜하우어는 삶과 꿈이 같은 책의 다른 페이지 같다고 했대요.
그 말이 조금 무섭게 들리기도 했어요. 그래도 꿈의 페이지는 넘기면 끝나지요. 오늘이라는 페이지는 아직 제가 쓸 수 있고요.
꿈은 깨면 끝나는 거라 오늘 하루는 다시 내 것이겠지요.
악몽이 남아 있는 아침엔 창을 열고 진짜 바람부터 맞아봐도 괜찮은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