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불 빨래를 하러 동네 빨래방에 갔어요. 밤 아홉 시쯤이었지요.
세탁을 돌려놓고 건조기 앞 의자에 앉았어요. 동그란 유리창 안에서 이불이 천천히 굴러가는 걸 한참 봤네요.
빨래방에서는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어요.
기계가 다 해주니까 저는 기다리기만 하면 되지요. 처음엔 그 시간이 지루할 줄 알았어요. 그런데 막상 앉아 있으니 이상하게 편하더라고요. 해야 할 일이 기계로 넘어가 있는 동안은 저도 쉬어도 되는 거니까요.
건조기 창문을 계속 보게 돼요.
이불이 위로 올라갔다가 툭 떨어지고, 또 올라갔다가 떨어지지요. 같은 움직임이 반복되는데 질리지가 않네요. 빗소리나 파도 소리처럼 머리를 비워주는 것 같았어요.
할 일을 기계에게 맡긴 사이의 시간은, 아무에게도 빚지지 않은 시간이다.
옆 건조기 앞에는 학생 하나가 앉아 있었어요.
자기 빨래가 다 돌아서 알림음이 울렸는데도 꺼내지 않더라고요. 이어폰을 낀 채 몇 분을 더 앉아 있었지요. 저처럼 그 시간이 아까웠던 걸까요. 괜히 웃음이 났네요.
빨래방에는 늘 따뜻한 냄새가 나요.
섬유유연제 냄새와 건조기에서 나오는 열기가 섞인 냄새요. 그 냄새 속에 앉아 있으면 몸이 조금 풀리더라고요. 밖은 쌀쌀한 밤이었는데 안은 포근했어요.
건조기가 멈추고 이불을 꺼냈어요.
따끈따끈하고 바삭하게 말라 있었지요. 그걸 안고 집에 걸어오는데 품이 따뜻했어요. 그날 밤 그 이불을 덮고 누우니 빨래방에서 보낸 시간이 이불 속에 같이 들어온 것 같았네요.
요즘은 빨래방 가는 날을 조금 기다려요.
할 일이 있는데 할 수 있는 게 없는 시간, 그게 생각보다 귀하더라고요. 그런 몇십 분을 가끔은 그냥 앉아서 보내도 괜찮은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