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와 카페에서 얘기하다가 친구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어요. 그 사람 요즘 잘 지내더라.
친구는 말하고 나서 제 표정을 살폈지요. 저는 대답 대신 식은 커피를 한 모금 마셨어요. 그리고 다행이네, 라고만 했네요.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
헤어진 사람이 힘들게 지내길 바라진 않으니까요. 같이 지낸 시간이 있었으니 잘 살았으면 하는 마음이 있지요. 그 마음은 진심이었어요.
그런데 다른 마음도 같이 들었어요.
나 없이도 잘 지내는구나 하는 서운함이요. 저는 아직 가끔 둘 몫을 사 오는 습관이 남아 있는데, 그 사람은 벌써 다른 일상을 꾸렸다는 게요. 그 마음이 좀 유치한 것 같아 혼자 민망했네요.
헤어진 사람의 안부는, 다행과 서운함을 한 잔에 섞어 건네받는 일이다.
생각해보면 그 시간이 진짜였기 때문이겠지요.
아무것도 아니었다면 소식을 들어도 아무렇지 않았을 거예요. 다행이면서 서운한 건, 그 사람이 한때 제 하루의 큰 부분이었다는 뜻이고요. 두 마음 다 그 시간의 흔적이군요.
친구가 괜히 말했나 싶은지 미안해했어요.
저는 괜찮다고, 알려줘서 고맙다고 했지요. 모르고 지내다 나중에 우연히 듣는 것보다 친구한테 듣는 게 나았으니까요. 친구가 그제야 조금 웃었어요.
쇼펜하우어는 바꿀 수 없는 걸 받아들이면 조금 가벼워진다고 했대요.
그 사람이 잘 지내는 건 제가 바꿀 수 있는 일이 아니지요. 바꾸고 싶지도 않고요. 그걸 그냥 받아들이니까 서운함이 조금 옅어지더라고요.
그날 집에 오는 길에 비가 조금 내렸어요.
우산을 쓰고 천천히 걸었지요. 그 사람과 자주 가던 골목을 지났는데 예전처럼 가슴이 내려앉지는 않았어요. 시간이 조금씩 일을 하고 있었던 거군요.
잘 지낸다는 소식에 다행과 서운함이 같이 드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겠지요.
둘 중 하나를 지우려 하지 말고 두 마음 다 그대로 두셔도 괜찮은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