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나방은 뭐든 먼저 하는 애잖아. 근데 연락만큼은 절대 먼저 안 하거든.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먼저 하면 지는 것 같대.
그 말에 칼손도 고개를 끄덕이더라. 자기도 그렇대. 돌부처는 원래 아무한테도 안 하니까 빼고.
불나방 내가 먼저 하면 내가 더 아쉬운 거잖아.
근데 불나방이 폰을 보여줬는데 좀 놀랐어. 메모장에 보낼 메시지가 열 개 넘게 있더라.
친구한테 쓰다가 전송 안 하고 붙여넣어 둔 거래. 뭐하냐, 밥 먹었냐, 요즘 바쁘냐.
다 짧은 말이야. 근데 하나도 못 보낸 거라니까.
그거 보고 알았지. 얘는 안 하는 게 아니라 못 하는 거구나.
그래서 물어봤어. 먼저 연락하면 뭘 지는 거냐고.
걔가 좀 생각하더니 대답을 못 하더라. 그냥 그런 느낌이래.
생각해보면 연락에 이기고 지는 게 어디 있냐. 먼저 한 사람이 문을 연 거고 안 한 사람은 기다린 거잖아.
근데 기다리는 동안 둘 다 메모장에 쓰고 있을 수도 있거든.
칼손 걔도 그러고 있을 수도 있겠네.
이거 동아리방에서 매일 보는 거랑 비슷하더라. 먼저 말 꺼내는 게 무서운 거.
물린 애가 먼저 물렸다고 말 못 하는 거랑 같아. 먼저 말하면 약한 사람 되는 것 같으니까.
근데 누가 먼저 꺼내면 다들 따라서 말하거든. 첫 마디가 제일 무거운 거라니까.
그날 불나방이 메모장에서 하나 골라서 보냈어. "밥 먹었냐." 제일 짧은 거로.
오 분 만에 답장이 왔대. 먹었다고, 너는 어떠냐고.
그걸 보는 불나방 얼굴이 진짜 웃겼어. 이긴 사람 얼굴이었거든.
너도 메모장에 못 보낸 말 쌓여 있으면 제일 짧은 거 하나만 보내봐. 지는 거 아니라니까.
문 여는 거야. 동아리방 문도 그렇게 열어놨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