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에 동네 문구점 앞을 지나다 들어갔어요. 딱히 살 게 있었던 건 아니에요.
펜 진열대 앞에 한참 서 있었지요. 색색의 펜이 줄지어 꽂혀 있었네요. 집에 펜이 수십 자루 있는데도 또 고르고 있었어요.
진열대 옆에 펜을 시험해보는 메모지가 있었어요.
아이들이 남긴 낙서가 가득했지요. 동그라미, 별, 자기 이름 같은 거요. 그 사이로 또박또박한 글씨가 하나 보였어요. 오늘도 수고했어. 누가 썼는지 모를 그 글씨 앞에서 한참 멈췄네요.
저도 펜 하나를 집어 그 옆에 적었어요.
너도. 작게요. 적고 나니 혼자 웃음이 났어요.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와 메모지 한 장으로 인사를 나눈 기분이었지요. 그 사람도 오늘 하루 수고했을 테니까요.
시필 메모지 한 장에도, 모르는 사람끼리 건네는 작은 안부가 남는다.
어릴 때 학교 앞 문방구가 생각났어요.
방과 후면 친구들과 거기 들러 스티커와 지우개를 구경했지요. 용돈이 모자라 한참 고민하다 하나만 샀어요. 그 고민하던 시간이 제일 즐거웠던 것 같아요. 지금 펜 진열대 앞에 서 있는 마음도 비슷했네요.
결국 짙은 파란색 펜 하나를 골랐어요.
계산대의 사장님이 그 색 잘 고르셨다고, 글씨가 차분하게 나온다고 하시더라고요. 펜 하나 사면서 그런 말을 들으니 기분이 좋았어요. 큰 가게에선 들을 수 없는 말이었지요.
쇼펜하우어는 큰 행복보다 작은 즐거움이 하루를 버티게 한다고 했대요.
쓸 데 없는 펜 하나를 고르는 시간이 딱 그런 즐거움 같아요. 거창하지 않아도 마음이 조금 가벼워지더라고요.
쓸 데 없는 펜 하나를 고르는 시간도 하루를 다정하게 마무리하는 방법이겠지요.
오늘은 작은 가게에 들러 잠깐 구경하고 가도 괜찮은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