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볼일이 있어 첫 자취방 근처를 지나갔어요. 골목 모퉁이 편의점 간판이 그대로 있더라고요.
그때는 거의 매일 밤 거기서 컵라면을 샀었지요. 간판 앞에서 한참 서 있다가 저도 모르게 조금 웃었네요.
그 시절이 좋았던 건 아니에요.
방은 좁고 추웠고, 돈은 늘 모자랐지요.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몰라서 밤마다 천장을 보며 뒤척이기도 했고요. 다시 돌아가라면 저는 아마 고개를 저을 거예요.
그런데 떠올리면 이상하게 그립더라고요.
시간이 지나면 기억이 조금씩 모서리를 깎는 것 같아요.
추웠던 건 흐려지고, 창밖으로 보이던 가로등 빛은 또렷하게 남지요. 불안했던 밤은 잊히고, 친구가 들고 와준 귤 봉지는 남고요. 힘든 건 지나가고 작은 따뜻함만 걸러져 남는 거겠지요.
지나간 날은, 견딜 때의 무게는 빼고 모양만 남긴다.
한참 생각해보니 제가 그리운 건 그 방이 아니었어요.
그 방에서 버티던 저였지요. 아무것도 없는데 뭔가를 기대하던 사람이요. 지금보다 가진 건 적었지만 바라는 게 또렷했던 시절이었군요. 그 또렷함이 그리운 거더라고요.
집에 오는 길에 이런 생각도 들었어요.
지금 이 하루도 몇 년 뒤엔 그리워질지 모르겠다고요. 지금은 버겁고 지치는 날이 많은데, 그것도 언젠가 모서리가 깎이겠지요. 그렇게 생각하니 오늘이 조금 덜 무겁게 느껴지더라고요.
그날 그 편의점에 들어가 봤어요.
컵라면 진열대는 자리가 바뀌어 있었고, 계산대 직원도 당연히 다른 분이었지요. 그래도 예전에 먹던 컵라면을 하나 사 들고 나왔어요. 집에서 끓여 먹었는데 맛은 그냥 그랬네요. 그 맛이 오히려 좋더라고요.
힘들던 시절이 그립다는 건 그때를 잘 지나왔다는 뜻 같아요.
지나오지 못했다면 그립지도 않았겠지요. 그러니 가끔 그 골목을 떠올리면 그때의 저한테 수고했다고 말해줘요. 그 말이 지금의 저한테도 조금 닿는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