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린 저녁에 된장찌개가 먹고 싶었어요. 예전에 할머니가 불러주신 대로 받아 적은 메모를 꺼냈지요.
그런데 메모에 이렇게 적혀 있더라고요. 된장 한 숟갈, 괄호 열고 할머니 숟가락으로. 그 괄호 앞에서 한참 웃었네요.
메모대로 끓였어요.
멸치 육수를 내고, 된장을 풀고, 애호박과 두부를 넣었지요. 순서도 양도 거의 같았어요. 그런데 한 숟갈 떠먹어보니 그 맛이 아니었네요. 맛이 없진 않은데 뭔가 하나가 빠진 느낌이었어요.
괄호 속 할머니 숟가락이 떠올랐어요.
할머니 숟가락은 조금 크고 끝이 닳아 있었지요. 그 숟가락으로 뜨는 한 숟갈은 아마 제 숟가락과 달랐을 거예요. 할머니는 계량을 안 하셨어요. 눈대중으로, 손 느낌으로 하셨지요. 그건 메모에 옮길 수가 없는 거였군요.
손으로 전해지던 맛은, 종이 위에서 조금씩 길을 잃는다.
먹으면서 생각해보니 맛만 그리운 게 아니었어요.
찌개 끓는 냄새가 나던 부엌, 할머니가 간 보라고 숟가락을 내밀던 손, 아직 뜨겁다고 후후 불어주던 소리 같은 거요. 그 맛은 그 모든 게 같이 들어간 맛이었겠지요. 그러니 혼자 끓인 찌개에서 그 맛이 날 리가 없네요.
엄마한테 전화로 이 얘기를 했어요.
엄마도 할머니 찌개 맛은 아직도 못 낸다고 하시더라고요. 몇십 년을 옆에서 봤는데도요. 그 말을 듣고 조금 안심이 됐어요. 제 솜씨가 모자란 것만은 아니었던 거지요.
요즘은 그 맛을 똑같이 내려고 애쓰지 않아요.
비슷하게만 나도 충분하다고 생각하기로 했지요. 끓이면서 할머니 부엌을 떠올리면 그것만으로도 맛이 조금 달라지는 것 같거든요. 기분 탓이겠지만 그 기분이 중요하더라고요.
할머니 음식이 그리운 건 할머니가 그리운 거겠지요.
같은 레시피로 그 맛이 안 나는 건 당연한 일이에요. 그 맛에는 할머니가 들어 있었으니까요. 그래도 끓이는 동안 그분 얘기를 떠올리면, 찌개 한 그릇이 조금 더 따뜻해지는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