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손이 하루는 집에 갔는데 열쇠가 없더래. 가방을 다 뒤져봤는데 없더래.
집에는 아무도 없고, 엄마는 저녁 늦게 오시고. 폰 배터리는 거의 없고.
그래서 현관 앞 계단에 앉아서 기다렸대. 두 시간.
칼손 진짜 아무것도 할 게 없었어.
처음 삼십 분은 짜증만 났대. 열쇠를 어디서 잃어버렸는지 계속 생각했대.
학교였나, 버스였나, 동아리방이었나.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대.
그러다 자기한테 화가 났대. 왜 이렇게 덤벙대나. 계단에 앉아서 혼자 자기를 혼냈대.
근데 한 시간쯤 지나니까 좀 달라졌대. 화낼 힘도 없어졌대.
그냥 계단에 앉아서 이것저것 봤대. 복도 창문 밖 하늘, 지나가는 고양이, 계단 난간의 페인트 벗겨진 자리.
평소엔 그냥 지나치던 거잖아. 근데 그날은 그게 다 보였대.
폰이 없으니까 눈이 딴 데로 가더래.
불나방 고양이 무슨 색이었어?
그러다 옆집 할머니가 장 보고 오시다가 칼손을 보셨대.
왜 거기 앉아 있냐고 물으셔서 열쇠를 잃어버렸다고 했대.
할머니가 아무 말 없이 장바구니에서 귤 두 개를 꺼내 주시고 들어가셨대. 칼손이 고맙다고 할 새도 없이.
칼손이 그 귤 얘기를 하면서 좀 울컥하더라. 그날 그 귤이 제일 맛있었대.
생각해보면 그 두 시간은 칼손한테 갇힌 시간이었잖아. 아무 데도 못 가고 아무것도 못 하는.
근데 그 갇힌 시간에 귤이 왔어. 평소 같으면 그냥 지나쳤을 할머니가 칼손을 본 거야.
바쁘게 다닐 때는 그런 게 안 오잖아. 멈춰 있으니까 누가 알아봐 준 거라니까.
돌부처 멈춰 있으면 보이는 게 있어.
열쇠는 다음 날 찾았대. 동아리방 소파 틈에 끼어 있었대. 우리가 찾아줬어.
칼손이 그 열쇠에 고리를 하나 달았어. 귤색 고리. 할머니 생각나서.
너도 어디 갇혀서 아무것도 못 하는 시간이 오면 너무 화내지 마. 그 시간에 귤 같은 게 올 수도 있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