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동아리방으로 옮기고 처음 비가 왔어. 오후 내내.
새 방은 창이 커서 빗소리가 진짜 크게 들려. 옛날 방은 창이 작아서 잘 안 들렸거든.
처음엔 좀 시끄럽다고 생각했어. 근데 듣다 보니까 좋더라.
칼손 빗소리 크다. 근데 좋다.
불나방이 갑자기 의자를 창 앞으로 끌고 갔어. 그리고 앉았어.
다들 따라 했어. 의자 다섯 개를 창 앞에 일렬로 놓고 앉았어. 신입 후배까지.
그리고 아무도 말을 안 했어. 그냥 비 오는 거 봤어.
폰도 다들 내려놨어. 누가 하자고 한 것도 아닌데.
한 시간쯤 그렇게 앉아 있었어. 빗소리만 들렸어.
가끔 누가 한숨을 쉬었는데 빗소리에 묻혀서 잘 안 들렸어.
그게 좋더라. 한숨이 묻히니까 마음 놓고 쉴 수 있었어.
나중에 애들한테 물어봤어. 왜 다들 그렇게 조용히 있었냐고.
칼손은 빗소리가 생각을 덮어줬대. 머릿속 소리보다 빗소리가 커서.
불나방은 비 오는 거 보면 아무것도 안 해도 될 것 같대. 비 오는 날은 원래 가만히 있는 날이니까.
돌부처는 짧게 말했어.
돌부처 비는 그냥 와.
이유 없이 그냥 온대. 그게 편하대. 이유를 찾을 필요가 없으니까.
생각해보면 우리 방 애들은 늘 뭔가 해야 할 것 같은 마음이잖아. 확인해야 하고, 결정해야 하고, 버텨야 하고.
근데 빗소리 듣는 동안은 아무것도 안 해도 됐어. 그냥 듣기만 하면 됐어.
그게 쉬는 거였던 거라니까. 빗소리가 우리 대신 시끄러워줬어.
비가 그치니까 창밖이 환해졌어. 다들 기지개를 켰어.
불나방이 그러더라. 다음에 비 오면 또 하자고. 의자 일렬로.
새 방이 좀 더 우리 방 같아진 날이었어. 너도 마음이 시끄러운 날 비가 오면 창 앞에 앉아봐. 아무것도 안 해도 된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