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오후 동네 공원을 걸었어요. 정자 아래에 할아버지들이 모여 계셨지요.
가까이 가보니 장기를 두고 계셨어요. 두 분이 마주 앉으시고 네다섯 분이 둘러서서 구경하고 계셨네요. 이웃 아주머니 말로는 날씨 좋은 날이면 늘 그 자리에 모이신대요.
판 옆에 아무것도 없었어요.
돈도, 음료수도요. 그냥 장기만 두고 계셨지요. 이기면 웃으시고 지면 껄껄 웃으시고요. 구경하시는 분들은 훈수를 두다가 핀잔을 들으셨어요. 그 소리들이 공원에 정겹게 퍼졌네요.
한 할아버지가 말을 놓으셨다가 손을 드셨어요.
아이고, 그거 물러줘. 상대 할아버지가 혀를 차시면서도 그래, 이번만이야, 하시며 말을 돌려놓아 주셨지요. 옆에서 구경하시던 분이 웃으며 저한테 일러주셨어요. 오늘만 세 번째라고요.
이기고 지는 것보다 같이 앉아 있는 시간이 소중한 판에서는, 한 수쯤 물러주는 너그러움이 오간다.
한 판이 끝나자 할아버지들이 자리를 바꾸셨어요.
진 분이 일어나시고 구경하던 분이 앉으셨지요. 누가 이겼는지는 금방 잊으시는 것 같았어요. 다음 판이 시작되면 또 처음부터 웃으셨으니까요. 이기려고 두는 게 아니라 같이 있으려고 두시는 것 같았네요.
얼마 전 뉴스에서 어르신들이 모일 곳이 줄어든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경로당이 문을 닫거나 공원 정자가 철거되는 곳도 있다고요. 저는 그 사정을 자세히는 몰라요. 다만 이 정자 아래 장기판이 오래 그 자리에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장기를 잘 몰라요.
그래도 한참 서서 구경했지요. 한 할아버지가 아가씨도 한 판 해볼래, 하고 물으셨어요. 못 둔다고 했더니 가르쳐줄 테니 다음에 오라고 하셨네요. 그 말이 오래 남았어요.
쇼펜하우어는 남의 처지를 헤아리는 마음이 사람 사이 벽을 허문다고 했대요.
한 수를 물러주는 할아버지의 혀 차는 소리에도 그런 마음이 들어 있었던 것 같아요.
이기고 지는 것보다 같이 앉아 있는 시간이 더 소중한 판이 있는 것 같아요.
오늘은 누군가에게 한 수쯤 물러주는 너그러움을 건네봐도 좋겠는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