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나방이 사물함 정리하다가 옛날 연습장을 찾았대. 동아리방에 가져왔어.
거기 그림이 하나 있더라. 주식 시작하기 전에 그린 거래.
그림 속 불나방은 소파에 누워서 웃고 있었어. 옆에 말풍선이 있었고. "이제 걱정 끝!"
불나방 이때 나 진짜 이렇게 될 줄 알았다니까.
불나방이 그때 상상했던 걸 얘기해줬어.
조금만 하면 금방 괜찮아질 줄 알았대. 친구들이 다 잘 된다고 하니까.
매일 아침 웃으면서 폰을 보고, 걱정 없이 학교 다니고. 그림처럼 소파에 누워서.
근데 지금은 그림이랑 완전 다르대.
지금 불나방은 그 그림을 동아리방 소파 구석에서 보고 있었어. 팔걸이 문지르면서.
그림 속에선 누워서 웃고 있는데 지금은 구석에 앉아서 한숨 쉬고 있는 거야.
다들 그 장면이 좀 웃기면서도 짠했어. 같은 소파인데 완전 다른 그림이잖아.
칼손 나도 그런 그림 있었으면 지금 찢었을 것 같아.
근데 나는 그 그림을 보면서 좀 다른 생각이 들었어.
그때 불나방이 그 그림을 그린 건 틀린 게 아니잖아. 그땐 진짜 그렇게 될 것 같았던 거야.
누구나 시작할 때는 좋은 그림을 그려. 안 좋은 그림 그리면서 시작하는 사람은 없으니까.
그러니까 그림이랑 다르다고 그때 불나방이 바보였던 게 아니라니까.
그리고 하나 더 있어. 지금 불나방 그림도 나쁘지 않거든.
그림 속엔 불나방 혼자 소파에 누워 있잖아. 근데 지금은 소파에 칼손도 있고 돌부처도 있어. 담요 하나 나눠 덮고.
혼자 웃는 그림보다 같이 한숨 쉬는 그림이 더 따뜻할 수도 있는 거잖아.
돌부처 지금 그림에 우리 다 있어.
돌부처가 그 말 하니까 불나방이 그림을 한참 봤어.
그날 불나방이 연습장에 새 그림을 그렸어. 소파에 넷이 앉아 있는 그림.
말풍선은 안 그렸대. 무슨 말을 넣을지 모르겠대.
나는 그게 좋았어. 아직 정해지지 않은 그림이니까.
너도 시작할 때 상상했던 거랑 지금이 다르면 너무 실망하지 마. 지금 그림에도 좋은 게 있을 거라니까. 옆에 누가 있는지 한번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