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한 달에 하루 계좌 정리하시는 날이 있잖아. 그날 나는 밖에 있었거든.
그 날이면 나는 옆에 앉아 있기로 했는데 그날은 약속이 있었어.
돌아왔을 때 아무 일도 없었어. 엄마는 평소랑 똑같으셨고.
물어보지도 않으셨고 뭐라고도 안 하셨다니까. 원래 그 얘기를 안 하는 집이니까.
그러니까 진짜 아무 일도 없었던 거고.
칼손 그럼 괜찮은 거 아니에요?
근데 돌아왔을 때 종이가 식탁에 그대로 펴져 있더라. 늘 다 하시고 접어두시는 건데.
그날은 펴진 채로 있었어. 나는 그게 며칠 걸렸다니까.
접는 걸 잊으신 건지 아니면 다른 건지 모르겠더라. 물어볼 수도 없고.
없었던 게 잘못은 아니잖아. 약속이 있었고 매번 있겠다고 한 것도 아니고.
엄마도 뭐라고 안 하셨고. 그러니까 아무 문제가 없는 거라니까.
근데 마음이 남더라. 이건 갚을 데도 없는 거고.
돌부처 그런 건 혼자 갖고 있는 거지.
다음 달 그날에는 앉아 있었거든. 아무 말도 안 하고 옆에서 폰만 봤어.
엄마도 아무 말 안 하시고 다 하시고 종이를 접으시더라. 그게 다야.
근데 그날은 아무것도 안 남더라니까. 있었던 거랑 없었던 거 차이가 그거였어.
방에서도 내가 없던 날에 뭐가 있었다는 걸 나중에 듣는 경우가 있거든. 그럴 때 비슷하더라.
내가 있었어도 뭘 했을지는 모르는 거고. 그냥 있었다는 것만 다른 거잖아.
근데 그 있었다는 게 꽤 큰 거더라니까. 애들이 나한테 바라는 것도 그거였고.
칼손 있기만 해도 되는 거예요.
나는 뭘 모르는 애라서 그날 엄마가 어떠셨는지도 모르거든. 앞으로도 모를 거고.
근데 펴진 종이는 봤잖아. 그건 봤고 그거 하나가 며칠을 갔고.
그래서 그 날은 비워두기로 했다니까. 아무것도 안 하는데 그냥 있는 거니까 어려운 것도 아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