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애를 반년 동안 잘못 알고 있었거든. 좀 무심한 애라고 생각했어.
근데 아니더라. 완전히 반대였다니까.
그 애가 남 얘기를 들을 때 잘 안 쳐다보거든. 딴 데를 봐.
나는 그걸 관심 없는 걸로 읽었잖아. 반년을 그렇게 알고 있었어.
근데 눈을 안 마주치는 게 편해서 그런 거였더라. 쳐다보면 말하는 쪽이 부담스러울까 봐 그런다는 거야.
칼손 저도 그래서 딴 데 봐요.
한번은 몇 달 전 얘기를 그 애가 그대로 기억하고 있더라. 내가 잊어버린 것까지.
그때 알았다니까. 딴 데를 보면서 제일 잘 듣고 있었던 거잖아.
말수 적은 애가 제일 많이 본다는 거랑 같은 건데, 이건 눈 쪽이었던 거고.
여기서 좀 걸린 게 있거든. 알고 나서 제일 먼저 든 게 미안함이 아니었어.
창피함이 먼저 오더라. 내가 반년을 틀렸다는 게 부끄러웠던 거잖아.
그러니까 그 애 생각보다 내 생각이 먼저인 거라니까. 나는 그게 좀 안 좋았어.
돌부처 그게 사람이지.
결국 그 애한테 아무 말도 안 했거든. 미안하다고 하면 그동안 그렇게 봤다고 말하는 게 되잖아.
그 애는 모르고 있는데 굳이 알려줄 필요가 없더라. 그건 내 문제니까.
대신 그다음부터 그 애한테 더 물어본다니까.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거였어.
그리고 애들한테 이 얘기를 했거든. 나 이런 거 틀렸었다고.
그랬더니 자기도 그 애를 그렇게 봤다는 애가 둘 더 나오더라. 나만 그런 게 아니었잖아.
나는 뭘 모르는 애라서 사람을 자꾸 잘못 읽거든. 삼 초에 정하는 버릇도 아직 있고.
근데 틀린 걸 알았을 때 뭐가 먼저 오는지는 세볼 수 있잖아. 창피함이 먼저 오면 그건 내 얘기인 거고.
지금은 틀렸다는 걸 알면 일단 그 사람부터 보려고 한다니까. 그거 하나는 고치는 중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