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에 아빠가 누구랑 주식 얘기를 하시는 걸 본 적이 있거든. 나는 그때 아무것도 몰랐어.
그냥 어른들 얘기구나 했다니까. 재미도 없고.
근데 그 장면에서 하나가 기억나거든. 그 얘기를 하실 때 늘 창문 쪽으로 몸을 반쯤 돌리고 계셨어.
전화를 하시든 누가 오시든 그랬다니까. 나는 그게 그냥 버릇인 줄 알았어.
지금 생각하면 그게 아니었던 것 같더라.
불나방 뭐 숨기시는 거예요?
숨기시는 건 아니었을 거야. 그 얘기를 하고 계셨으니까.
근데 얼굴은 안 보이려고 하셨던 것 같더라. 말은 하는데 표정은 안 주는 거잖아.
나중에 아빠가 옛날에 크게 물렸던 얘기를 하셨을 때도 나를 안 보고 티비 쪽만 보셨거든. 같은 자세였던 거라니까.
이게 좀 이상한 건데, 나는 그 장면을 그때 다 봤거든. 눈앞에서 봤어.
근데 아무것도 못 본 거였잖아. 보이는 건 다 봤는데 뜻은 하나도 못 읽었으니까.
몇 해가 지나서 같은 장면이 다시 보이는 거라니까. 그게 좀 이상한 기분이더라.
돌부처 알고 나면 다시 보이지.
이거 알고 나서 좀 조심하게 됐거든. 지금 내가 보는 것도 나중에 다르게 보일 거잖아.
방에서 애들 보는 것도 그럴 거고. 지금 다 안다고 생각하는 게 제일 위험한 거라니까.
그래서 적어두기로 한 거고. 나중에 다시 읽으면 다르게 보일 테니까.
그리고 아빠한테 그 자세 얘기는 안 했거든. 말씀드리면 그다음부터 안 하실 것 같잖아.
나는 뭘 모르는 애라서 그때도 몰랐고 지금도 반은 모르거든. 앞으로도 그럴 거고.
근데 몇 해 지나서 알아보는 것도 보는 거더라. 그 자리에 없어도 되는 거잖아.
그러니까 지금 못 알아보는 게 영영 못 보는 건 아니라니까. 그건 좀 다행이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