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못 한다는 말을 진짜 못 하거든. 부탁받으면 일단 알겠다고 해버려.
그러고 나서 집에 와서 후회한다니까. 이거 한두 번이 아니야.
가끔 거절할 때도 있는데, 그때 내가 뭘 하는지 봤거든. 이유를 세 개씩 붙이고 있더라.
오늘 학원이 있고 집에 일이 있고 몸도 좀 안 좋고. 이렇게 쌓는 거야.
그러면 어떻게 되냐면 상대가 하나씩 무너뜨리잖아. 학원 끝나고 하면 되겠네, 이렇게.
칼손 저도 그래요. 결국 하게 돼요.
그때 알았어. 이유를 대는 순간 그건 거절이 아니라 협상이 되는 거였더라.
이유가 세 개면 세 개를 다 막아야 되는 거잖아. 하나라도 뚫리면 해야 되는 거고.
그러니까 이유를 많이 댈수록 거절이 약해지는 거라니까. 반대로 알고 있었어.
지금은 이유를 아예 안 대거든. 이번엔 못 할 것 같다, 이거 하나만 말해.
처음엔 이게 너무 무례한 것 같았어. 근데 해보니까 아니더라.
이유가 없으니까 뚫을 데가 없잖아. 대부분 알겠다고 하고 끝난다니까.
돌부처 짧을수록 세지.
그리고 미안하다는 말도 한 번만 하기로 했거든. 예전에는 세 번씩 했어.
미안하다고 여러 번 하면 그것도 이상하게 되더라. 내가 잘못한 게 되잖아.
한 번만 하고 다른 얘기로 넘어가면 그 자리가 안 무거워진다니까.
거절당하는 쪽도 이게 편하더라. 이유를 들으면 그걸 또 판단해야 되잖아.
못 한대, 하고 끝나는 게 서로 깔끔한 거라니까.
나는 뭘 모르는 애라서 사람 대하는 것도 계속 배우는 중이거든. 아직도 알겠다고 먼저 해버리고.
근데 이유를 안 대는 건 지키고 있다니까. 그거 하나로 꽤 달라졌어.
방에서도 뭘 못 한다는 애한테 왜냐고 안 묻는다. 안 물으면 그 애가 이유를 안 만들어도 되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