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에 메일 한 통을 받았어요. 제 잘못이 아닌 일로 저를 탓하는 내용이었지요.
읽자마자 손가락이 키보드로 갔어요. 바로 답장을 쓰려고요. 그런데 손을 멈췄네요. 그리고 하나, 둘, 셋 숨을 쉬었어요.
언젠가 읽은 방법이었어요.
화가 날 때 바로 말하지 말고 숨을 세 번 쉬라는 거요. 그동안은 잘 안 됐지요. 화가 나면 숨 쉬는 것도 잊어버렸으니까요. 그날은 이상하게 그 말이 떠올랐어요. 천천히 들이쉬고, 천천히 내쉬었네요.
셋째 숨을 쉬는데 창밖이 보였어요.
비둘기 한 마리가 사무실 창 난간에 내려앉고 있었지요. 날개를 접고 고개를 갸웃했어요. 그걸 보는 순간 화가 조금 빠져나갔어요. 세상은 그대로 흘러가고 있었던 거예요. 제 메일 한 통과 상관없이요.
숨 세 번을 쉬는 동안, 화는 조금씩 몸 밖으로 빠져나간다.
그러고 나서 답장을 썼어요.
처음 쓰려던 문장과 완전히 달랐지요. 처음엔 억울함과 날 선 말들이 가득했을 거예요. 그런데 숨을 고른 뒤엔 사실만 차분히 적을 수 있었어요. 오해가 있는 것 같다고, 이런 경위였다고요.
얼마 뒤 상대에게서 답이 왔어요.
자기가 잘못 알았다고, 미안하다고요. 만약 처음처럼 날 선 답장을 보냈다면 일이 더 커졌을 거예요. 숨 세 번이 그걸 막아준 셈이었네요.
숨을 고르는 건 화를 참는 것과는 달랐어요.
화가 안 난 척하는 게 아니라, 화가 난 걸 알아차리고 잠깐 기다리는 거였지요. 그 기다림 사이에 말할 문장을 고를 수 있었어요. 참는 게 아니라 고르는 시간이었던 거군요.
쇼펜하우어는 감정이 끓어오를 때 내린 판단은 대개 후회로 남는다고 했대요.
그날의 숨 세 번이 그 후회를 하나 덜어준 것 같아요. 거창한 수양이 아니어도 숨 몇 번으로 충분할 때가 있더라고요.
숨 세 번이 말 한마디를 바꿀 수 있는 것 같아요.
화가 치미는 순간엔 키보드에서 손을 떼고 창밖을 한 번 봐도 괜찮은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