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에서 부탁을 받다 보면 재밌는 게 있거든. 같은 부탁인데 꺼내는 방식이 애마다 달라.
몇 번 받아보니까 그 방식에 그 애가 다 들어 있더라니까.
한 애는 부탁하기 전에 안부부터 두 줄을 써. 밥 먹었냐, 오늘 어땠냐.
그러고 나서 세 번째 줄에 본론이 나온다니까. 문자가 늘 제일 길어.
이 애는 부탁하는 게 미안한 거잖아. 미안하니까 앞에 뭘 깔아두는 거고.
칼손 그냥 말하면 되는데 그게 안 돼요.
반대로 인사도 없이 본론부터 던지는 애가 있어. 이거 좀, 하고 끝.
처음엔 좀 무례한가 했는데 아니더라. 이 애는 부탁을 부탁으로 안 보는 거야.
서로 그 정도는 하는 사이라고 이미 정해놓은 거라니까. 그것도 나름의 믿음인 거잖아.
제일 어려운 게 세 번째야. 부탁을 안 하고 그냥 흘리는 애.
아 이거 어떡하지, 하고 혼잣말처럼 말한다니까. 내가 알아서 해주기를 기다리는 거야.
이 애는 거절당하는 게 무서운 거더라. 부탁을 안 했으니까 거절도 없는 거잖아.
돌부처 저건 좀 답답하지.
셋 중에 제일 안 좋은 게 세 번째더라. 안 해주면 서운한데 부탁은 안 한 게 되잖아.
그러면 그 애는 혼자 서운해하고 나는 이유를 모르는 거라니까. 그렇게 몇 번 쌓이면 사이가 이상해져.
그래서 그런 게 보이면 내가 먼저 물어본다. 그거 도와달라는 거지, 하고.
나도 어느 쪽인지 봤거든. 나는 첫 번째더라. 안부를 두 줄 깔고 시작해.
미안한 걸 겁내는 쪽이었던 거잖아. 그거 알고 나서 좀 짧게 쓰려고 한다니까.
나는 뭘 모르는 애라서 사람 속은 못 읽거든. 물어봐도 잘 대답 안 하고.
근데 부탁하는 방식은 그냥 보이잖아. 그거 하나만 봐도 그 애가 뭘 겁내는지 알겠더라.
미안한 걸 겁내는 애랑 거절을 겁내는 애가 다른 거라니까. 대하는 것도 달라야 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