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알던 지인이 있어요. 만나고 나면 늘 지쳐서 돌아오게 되는 사람이지요.
그날도 그 사람에게서 메시지가 왔어요. 또 남 얘기, 또 불평이었네요. 저는 그 사람 대화창을 열고 차단 버튼 위에 엄지를 올려놓았어요. 그대로 오 분쯤 있었지요.
버튼 하나 누르면 끝나는 일이었어요.
그런데 엄지가 움직이지 않더라고요. 그 사람과 함께한 시간이 떠올랐거든요. 처음 만났을 땐 좋은 사이였어요. 힘들 때 도와준 적도 있었고요. 그 기억들이 엄지를 붙잡고 있었네요.
요즘은 그 사람을 만나면 기운이 빠져요.
대화는 늘 다른 사람 흉이나 자기 불만으로 흘러가지요. 저는 고개를 끄덕이며 듣기만 하고요. 집에 오면 이유 없이 마음이 무거워요. 그 무게가 쌓여서 차단 버튼까지 오게 된 거예요.
끊지 못하는 사이에는, 지친 마음과 고마웠던 기억이 같이 묶여 있다.
연락을 끊는 게 나쁜 사람이 되는 것 같았어요.
먼저 등을 돌리는 거니까요. 그 사람이 서운해할 것도 마음에 걸렸지요. 그런데 생각해보니 저도 계속 지치고 있었어요. 저를 지키는 것도 필요한 일이었던 거군요.
쇼펜하우어의 고슴도치 얘기가 떠올랐어요.
너무 가까우면 서로 찔리니 적당한 거리를 찾는다는 얘기요. 꼭 끊어버려야 하는 건 아니었어요. 거리를 조금 넓히는 것만으로도 덜 찔릴 수 있겠다 싶었지요.
결국 차단은 하지 않았어요.
대신 그 사람 대화창의 알림만 꺼두었지요. 그리고 휴대폰을 엎어놓았어요. 답장은 제가 여유 있을 때 하기로 했어요. 그것만으로도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더라고요.
끊지 못하는 것도 다정함이고 거리를 두는 것도 나를 지키는 일이겠지요.
오늘은 알림 하나 꺼두는 만큼의 거리부터 허락해줘도 괜찮은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