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을 먹고 있는데 천장 스피커에서 안내 방송이 나왔어요. 관리사무소였지요.
다음 주에 세대별 난방 점검이 있으니 협조해달라는 내용이었어요. 뉴스에서도 겨울철 난방 점검 시기라는 얘기가 나왔던 게 생각났네요.
방송은 늘 하던 대로 딱딱하게 이어졌어요.
점검 날짜, 시간, 주의사항이요. 그런데 끝에 직원분이 한마디를 덧붙이셨지요. 날이 많이 추워졌습니다, 감기 조심하세요. 대본에 없는 말 같았어요. 목소리가 조금 부드러워져 있었거든요.
그 순간 복도 건너편 집에서 소리가 들렸어요.
네~ 하는 대답이었지요. 할머니 목소리 같았어요. 스피커에 대고 대답하신 거예요. 듣는 사람이 없는 걸 아시면서도요.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났네요.
대본에 없는 한마디에도, 누군가는 대답을 건네는 밤이 있다.
생각해보면 그 방송이 겨울을 알려준 셈이에요.
달력보다, 옷차림보다 먼저요. 난방 점검이라는 말이 나오면 이제 정말 추워지는구나 싶지요. 관리사무소 목소리가 계절의 시작을 알리는 종 같았어요.
그동안 그 방송을 제대로 들은 적이 없었어요.
늘 소음처럼 흘려들었지요. 주차 안내, 분리수거 안내, 엘리베이터 점검 안내 같은 거요. 그런데 그 방송을 하는 사람도 누군가였던 거예요. 감기 조심하라고 덧붙이고 싶은 마음이 있는 사람이요.
다음 주 점검 날 기사님이 오셨어요.
보일러를 살펴보시고 이상 없다고 하셨지요. 나가시면서 방송 들으셨죠, 감기 조심하세요, 하셨어요. 그 방송을 기사님도 들으셨나 봐요. 같은 말이 두 번 오니 더 따뜻하게 느껴졌네요.
쇼펜하우어는 남의 처지를 헤아리는 작은 마음이 사람 사이를 가깝게 한다고 했대요.
방송 끝에 붙은 그 한마디가 딱 그런 마음 같았어요. 얼굴도 모르는 수백 세대에게 건넨 걱정이었으니까 그렇겠지요.
대본에 없는 한마디에도 누군가는 대답하는 밤이 있는 것 같아요.
오늘은 무심히 지나치던 안내 방송에 귀를 한 번 기울여봐도 좋겠는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