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친 저녁이면 욕조에 따뜻한 물을 받아요. 물이 차오르는 소리를 들으며 욕조 가장자리에 앉아 있지요.
그날은 밖에 비가 왔어요. 욕실 작은 창에 김이 서려서 바깥은 하나도 안 보였고, 빗소리만 들렸네요.
반신욕은 물 받는 시간부터 시작되는 것 같아요.
수도꼭지를 틀어두고 온도를 손으로 맞추지요. 너무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게요. 물이 조금씩 차오르는 걸 보고 있으면 마음도 같이 가라앉더라고요. 서두를 수 없는 시간이에요.
물에 몸을 담그면 몸이 먼저 풀려요.
하루 종일 의자에 앉아 굳어 있던 어깨가 조금씩 내려가지요. 발끝부터 따뜻해지고요. 몸이 풀리니까 마음도 덩달아 느슨해지네요. 생각이 많던 머리도 조금 조용해지고요.
따뜻한 물에 잠기는 동안, 하루의 모서리들이 조금씩 둥글어진다.
욕조에 들어갈 때는 휴대폰을 두고 가요.
처음엔 심심할 것 같았지요. 그런데 아무것도 안 들고 들어가니 오히려 좋더라고요. 빗소리,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 제 숨소리만 들려요. 그 소리들 속에 이십 분쯤 있는 거예요.
반신욕을 하면 가끔 어릴 때 생각이 나요.
할머니 손 잡고 동네 목욕탕에 가던 날이요. 뜨거운 탕에 들어가면 할머니가 어깨까지 담그라고 하셨지요. 나와서 마시던 바나나 우유 맛도 기억나네요. 그 목욕탕은 이제 없어졌지만요.
물이 조금 식을 때쯤 나와요.
수건으로 몸을 닦고 나오면 방 공기가 서늘하게 느껴지지요. 그 서늘함이 오히려 개운해요. 그날 밤은 대개 금방 잠이 들더라고요.
지친 저녁에는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지요.
그럴 땐 그냥 욕조에 물부터 받아보세요. 그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조금씩 녹아 내려가는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