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탁을 하나 거절했습니다. 안 되는 게 맞는 상황이었어요.
그런데 보내고 나서 답이 올 때까지 화면을 못 껐네요. 그러고 며칠이 걸렸습니다.
지금 다시 생각해도 받았으면 안 됐어요.
받았으면 제가 무너졌을 거고, 무너지면 결국 그 사람한테도 못 해줬을 겁니다. 그러니까 판단은 맞았던 거지요. 그런데 판단이 맞다고 마음이 편해지지는 않는걸요.
옳은 결정이 늘 가벼운 것은 아니다. 무거운 채로 옳을 수도 있다.
남는 건 대개 장면입니다.
부탁할 때 그 사람 목소리라든가 표정 같은 것들이요. 그게 며칠 동안 몇 번씩 돌아옵니다. 안 된다고 쓴 문장보다 부탁하던 얼굴이 더 오래 남더라고요.
거절하고 나면 저는 잠깐 나쁜 사람이 됩니다.
실제로 나쁜 짓을 한 게 아닌데도요. 그동안 도와줬던 것들은 하나도 안 떠오르고 이번에 안 해준 것만 크게 보입니다. 한 번의 거절이 그동안을 다 덮는 것처럼 느껴지는 겁니다.
며칠 뒤에야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 사람은 아마 바로 다른 데를 알아봤을 겁니다. 저한테만 물어본 것도 아니었을 테고요. 제가 며칠 붙들고 있는 동안 그쪽은 이미 다음으로 갔겠지요. 대개 이렇게 되더라고요.
한동안은 거절할 때 이유를 길게 붙였습니다.
그게 예의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길게 쓸수록 변명처럼 되고 저도 더 오래 붙들게 되더라고요. 요즘은 짧게 씁니다. 안 되겠다는 말과 미안하다는 말이면 충분한걸요.
대신 제가 할 수 있는 게 있으면 그건 붙여둡니다.
이건 못 하지만 저건 할 수 있다는 식으로요. 없으면 안 붙이고요. 억지로 만들면 그것대로 부담이 되니까 있을 때만 합니다.
거절하고 아무렇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하겠지요.
며칠 남는다는 건 그 사람을 아무렇게나 대하지 않았다는 뜻인걸요. 오늘 안 된다고 말하고 나서 마음이 무거우시다면, 그건 결정이 틀려서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