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주 금요일에 연차를 쓰려고 신청서를 열었어요. 사유 칸에 개인 사유, 라고 쓰려다 손이 멈췄지요.
그리고 지우고 다시 썼어요. 가족 행사 및 개인 용무로 부득이하게. 사실 가족 행사는 없었네요. 그냥 쉬고 싶었어요.
이상하지요.
연차는 제게 주어진 쉬는 날인데, 쓰려고 하면 꼭 이유를 붙이게 돼요. 그냥 쉬고 싶다고 하면 게을러 보일 것 같아서요. 그래서 그럴듯한 이유를 지어내지요. 쉬는 것도 허락받아야 하는 일처럼 느껴지더라고요.
신청서를 올리기 전에 팀장님께 먼저 말씀드렸어요.
다음 주 금요일에 하루 쉬어도 될까요, 하고요. 그러고는 묻지도 않으셨는데 이유를 길게 설명했지요. 팀장님은 그래요, 쉬어요, 한마디만 하셨어요. 제가 혼자 긴 변명을 한 셈이었네요.
쉬겠다는 말 뒤에 붙는 긴 이유는, 대개 남이 아니라 내가 나를 설득하는 말이다.
생각해보니 눈치는 남보다 제 안에 있었어요.
다들 바쁜데 나만 쉬어도 되나, 내가 빠지면 누가 곤란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요. 실제로 누가 뭐라고 한 적은 없었지요. 그 목소리는 늘 제 머릿속에서만 났던 거군요.
얼마 전 옆자리 동료가 연차를 냈어요.
사유를 물어보니 그냥 아무것도 안 하려고, 라고 웃더라고요. 그 대답이 이상하게 부러웠어요. 그렇게 담백하게 말할 수 있다는 게요. 그리고 동료가 쉬는 날 아무도 그 일로 뭐라 하지 않았지요.
연차를 쓴 금요일엔 정말 아무것도 안 했어요.
늦게 일어나 창가에서 차를 마시고, 비 오는 거리를 오래 봤지요. 죄책감이 조금 남아 있었지만 오후쯤엔 그것도 옅어졌네요. 쉬는 것도 연습이 필요한 모양이에요.
쉬는 데는 원래 이유가 필요 없겠지요.
다음 연차 사유 칸에는 길게 쓰지 않고 그냥 쉼이라고만 적어보려고요. 그렇게 적어도 괜찮은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