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자리 선배가 사흘 동안 휴가를 갔어요. 둘째 날 아침 탕비실에 가니 종이컵이 바닥나 있더라고요.
사무실 창가 화분도 흙이 하얗게 말라 있었어요. 그제야 알았네요. 그동안 매일 아침 누가 그걸 챙겨왔는지요.
선배는 그런 얘기를 한 번도 한 적이 없어요.
그냥 아침에 일찍 와서 컵을 채우고 화분에 물을 주고 자리에 앉았던 거지요. 저는 그게 원래 그런 줄 알았어요. 종이컵은 원래 채워져 있고 화분은 원래 싱싱한 거라고요. 누군가의 손이 매일 거기 닿고 있었다는 걸 몰랐네요.
고마운 일도 매일 반복되면 당연해지더라고요.
처음엔 고마웠을 거예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냥 풍경이 되어버리지요. 쇼펜하우어는 사람이 가진 것은 잘 느끼지 못하고 잃었을 때 비로소 느낀다고 했대요. 마른 화분 앞에서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더라고요.
늘 있던 것은 잘 보이지 않는다. 빠지고 나서야 그 자리가 얼마나 컸는지 보인다.
화분에 물을 주면서 다른 것들도 떠올랐어요.
회의실 화이트보드 옆에 늘 새 펜이 있던 것, 비 오는 날 사무실 입구에 우산 비닐이 놓여 있던 것 같은 거요. 다 선배가 해둔 거였지요. 하나하나가 다 당연한 게 아니었군요.
조금 미안했어요.
그 많은 걸 받으면서 고맙다는 말 한 번 제대로 안 했으니까요. 그렇다고 지금 와서 하나하나 고맙다고 하기도 쑥스럽고요. 어떻게 해야 할지 한참 고민했네요.
선배가 돌아온 날 아침에 제가 먼저 출근했어요.
종이컵을 채워두고 화분에도 물을 줬지요. 선배가 들어오다가 웬일이냐며 웃었어요. 그냥 그동안 고마웠다고 짧게 말했지요. 선배가 뭘 새삼스럽게, 하고 넘어갔지만 얼굴은 밝았어요.
고마움이 당연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 같아요.
그래도 알아챈 순간부터 그건 다시 고마움이 되더라고요. 오늘은 늘 곁에 있던 사람에게 늦은 인사 한마디 건네봐도 좋겠는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