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하는 날 친구가 하루 종일 도와줬어요. 상자를 나르고 가구를 옮기고 정리까지 같이 했지요.
다 끝나고 친구가 웃으며 말했어요. 근데 너 짐 진짜 많다. 고맙다는 인사가 목에서 반쯤 멈췄네요.
정말 고마웠어요.
주말 하루를 통째로 내준 거니까요. 그런데 그 한마디가 마음에 걸렸지요. 농담인 줄 알면서도 제가 짐스러운 사람처럼 느껴졌거든요. 고마움과 서운함이 동시에 드니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처음엔 그 서운함을 밀어냈어요.
도와준 사람한테 서운해하는 건 배은망덕한 것 같았지요. 이렇게 고마운 사람에게 이런 마음이 드는 제가 좀 못나 보였고요. 그래서 그냥 고맙다고만 크게 말했네요.
고마운 사람에게 드는 서운함은, 고마움이 큰 만큼 더 숨기고 싶어진다.
그런데 밤에 정리하다 보니 알겠더라고요.
고마운 것도 진짜고, 서운한 것도 진짜라는 거요. 한 사람에게 두 마음이 같이 들 수 있는 거지요. 고마움이 있다고 서운함이 거짓이 되는 것도 아니고, 서운하다고 고마움이 줄어드는 것도 아니었군요.
친구는 아마 별생각 없이 한 말이었을 거예요.
하루 종일 무거운 상자를 나르다 보니 툭 나온 말이었겠지요. 저도 누군가를 도와주고 나서 비슷한 농담을 한 적이 있을 거고요. 그때 그 사람도 저처럼 반쯤 멈췄을지도 모르겠네요.
며칠 뒤 그 친구에게 밥을 샀어요.
이사 도와줘서 정말 고마웠다고 다시 말했지요. 그리고 웃으며 덧붙였어요. 근데 짐 많다는 말은 좀 찔렸어. 친구가 깜짝 놀라더니 미안하다고, 그런 뜻 아니었다고 하더라고요. 그 말을 듣고 나니 서운함이 스르르 풀렸어요.
고마운데 서운한 마음은 이상한 게 아니겠지요.
둘 중 하나를 지우려 하면 오히려 오래 남더라고요. 둘 다 조용히 인정해주면 조금씩 자리를 찾아가는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