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엄마랑 외할아버지 댁에 갔거든. 할아버지 방 책장을 보다가 두꺼운 공책을 하나 발견했어.
펼쳐보니까 신문 기사가 오려져서 붙어 있더라. 다 주식 기사였어.
종이가 누렇게 바래 있었어. 엄청 오래된 거였어.
근데 기사 옆 여백에 할아버지 글씨가 있었어.
숫자나 분석 같은 게 아니었어. 그날 날씨랑 반찬 이름이었어.
"맑음. 된장찌개." "비. 김치전." "흐림. 미역국."
기사마다 그렇게 적혀 있었어. 기사 내용이랑은 아무 상관 없는 것 같았어.
칼손 돌부처처럼 날씨로 쓰셨네.
할아버지한테 여쭤봤어. 이게 뭐냐고.
할아버지가 웃으시면서 그러셨어. 젊을 때 주식 하시면서 모은 거래. 기사는 그냥 붙여둔 거고, 진짜 적은 건 옆에 글씨래.
왜 날씨랑 반찬을 적으셨냐고 여쭤봤어.
할아버지가 그러셨어. 기사 내용은 다 잊어버렸대. 근데 그날 할머니가 뭘 해주셨는지는 기억하고 싶었대.
할아버지가 공책 한 페이지를 짚으셨어. "비. 김치전."
그날이 제일 안 좋은 날이었대. 집에 들어가기 싫었대.
근데 할머니가 아무것도 안 물어보시고 김치전을 부쳐주셨대. 그게 너무 맛있었대.
그래서 그날 기사 옆에 김치전을 적어두셨대. 기사보다 그 김치전이 더 중요했대.
불나방 할머니 진짜 멋있으시다.
엄마가 옆에서 듣다가 웃으셨어. 엄마는 그 공책을 어릴 때부터 알았대.
할아버지가 힘든 날엔 엄마도 같이 밥상에 앉았대. 할머니가 그런 날엔 꼭 전을 부치셨대.
엄마가 그러셨어. 그래서 엄마도 아빠 힘든 날엔 찌개를 끓인다고. 할머니한테 배운 거래.
돌부처 밥이 이어지네.
할아버지가 공책을 덮으시면서 그러셨어. 숫자는 지나가는데 밥은 남는다고.
나는 그 말이 오래 남았어. 할아버지도 우리 동아리방 애들처럼 버티셨던 거야. 그리고 그 버틴 날들 옆에 늘 누가 밥을 차려줬던 거고.
집에 와서 동아리방 일기장에 나도 한 줄 썼어. "맑음. 할아버지 공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