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 쉬는 시간에 복도에 서 있었거든. 옆에 졸업반 언니 오빠들이 모여 있었어.
시험 끝나면 뭐 할지 얘기하고 있더라. 여행, 운전면허, 알바.
근데 그중에 계좌 만들 거라는 얘기가 제일 많이 나왔어. 시험 끝나면 바로 만들 거래.
오빠 한 명이 제일 신나 있었어. 형이 하는 거 보고 자기도 하고 싶었대. 시험 때문에 참고 있었대.
다른 언니는 친구들이 다 한다고 했어. 자기만 안 하면 대화에 못 낄 것 같대.
다들 계좌 만드는 날을 진짜 기다리는 얼굴이었어. 동아리방에서 불나방이 처음 계좌 만든 날 얘기하던 그 얼굴.
불나방 그 설렘 나 알아. 떡볶이 먹었잖아.
근데 그 사이에 한 언니만 좀 달랐어.
다들 신나서 떠드는데 그 언니는 문제집 모서리를 계속 접었다 폈다 하더라. 말은 거의 안 하고.
누가 너도 할 거냐고 물으니까 그 언니가 그러더라. 아직 모르겠다고. 엄마가 예전에 힘들었던 걸 봐서.
그 말에 잠깐 조용해졌어. 그러다 금방 다시 딴 얘기로 넘어갔고.
나는 그 복도에서 좀 이상한 기분이었어. 신난 오빠 마음도 알 것 같고 망설이는 언니 마음도 알 것 같았거든.
동아리방에 둘 다 있잖아. 불나방 같은 애도 있고 칼손 같은 애도 있고.
그리고 둘 다 틀린 게 아니라니까. 설레는 것도 진짜고 무서운 것도 진짜고.
칼손 그 언니 마음이 나랑 비슷하네.
솔직히 그 언니한테 뭐라고 말해주고 싶었어. 망설이는 것도 괜찮다고.
근데 모르는 사이라 그냥 지나쳤어. 종이 쳐서 다들 교실로 들어갔고.
대신 동아리방에 와서 그 얘기를 했어. 돌부처가 한 마디 했어.
돌부처 안 해도 돼. 해도 되고.
그게 제일 맞는 말 같았어. 정답이 없는 거잖아.
너도 뭔가 시작하기 전에 설레거나 망설이고 있으면 둘 다 괜찮은 거야. 남들 다 한다고 따라갈 필요도 없고, 무섭다고 숨을 필요도 없고.
어느 쪽이든 그 마음 들어줄 데는 있다니까. 동아리방은 시작 전에도 열려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