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식 날 선배 한 명이 방에 들렀거든. 우리 방에 오래 있던 누나야.
엄마가 졸업식 갔다 오는 길에 꽃다발을 하나 더 사주셔서 그거 들고 있었어.
나는 뭔가 남기고 갈 줄 알았다니까. 마지막이니까 한마디쯤 하지 않겠냐.
근데 방 얘기를 하나도 안 하더라. 밥 먹었냐, 시험은 언제냐, 그런 얘기만 했어.
십 분쯤 앉아 있다가 일어났다니까. 문 앞에서 방을 한 바퀴 둘러보고는 손만 한 번 들어 보이고 갔어.
나는 좀 허전했어. 뭔가 있을 줄 알았는데 아무것도 없었잖아.
불나방 저는 뭐 해주실 줄 알았는데요.
한참 뒤에 그 선배랑 연락이 닿아서 물어봤거든. 그날 왜 아무 말도 안 했냐고.
말하면 그게 남을까 봐 그랬대. 자기가 한 말이 방에 규칙처럼 남으면 그건 좀 아니라는 거야.
나가는 사람이 남기는 말은 무겁다는 거다. 남아 있는 애들이 그걸 지켜야 될 것 같아진다는 거잖아.
생각해보니까 맞더라. 우리 방에 아직 굴러다니는 말 중에 옛날 사람이 남긴 게 몇 개 있거든.
그게 좋은 거면 괜찮은데 지금이랑 안 맞는 것도 있어. 근데 아무도 못 고치더라니까.
남긴 사람이 없으니까 고칠 사람도 없는 거잖아. 그래서 그대로 있는 거였어.
돌부처 안 남기는 게 남기는 거지.
그래서 나도 나갈 때는 아무 말 안 하기로 했거든. 지금부터 정해뒀어.
대신 있는 동안에 다 말해두려고 한다니까. 마지막에 몰아서 하는 게 아니라 그때그때 하는 거.
마지막 말은 무겁고 그때그때 하는 말은 가벼우니까 고치기도 쉽잖아.
그리고 다음 부장한테도 뭘 물려주려고 안 한다니까. 물려주면 그게 짐이 되잖아.
나는 뭘 모르는 애라서 남길 말도 없거든. 그건 진짜 걱정 안 해도 되는 거고.
근데 그 선배가 한 게 뭔지는 알겠더라. 방을 안 묶어두고 간 거잖아.
들어올 때 자리 만들어주는 것만 챙기는 게 아니라 나갈 때 자리 비워주는 것도 챙기는 거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