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리방 벽에 달력이 하나 걸려 있거든. 문구점에서 파는 흔한 거야.
근데 그게 몇 달째 같은 장이야. 아무도 안 넘긴다니까.
부장 되고 나서 하루는 그걸 넘기려고 손을 댔어.
그랬더니 옆에 있던 애가 그냥 두라고 하더라. 왜냐고 물어보니까 대답을 안 해. 그래서 손을 뗐어.
칼손 그거 손대면 안 돼.
불나방 나도 한 번 넘겼다가 혼났어.
돌부처 놔둬.
셋 다 알고 있는데 나만 몰랐던 거지. 좀 어이없더라.
자세히 보니까 그 장에 볼펜으로 동그라미가 하나 있어.
날짜 하나에만 동그랗게. 그리고 그 날짜는 이미 한참 지났고. 뭐라고 적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동그라미만 있더라.
나는 그게 무슨 날인지 아직도 몰라. 물어본 적도 없고.
몇 번 물어보려다가 말았어.
동그라미를 친 애가 누군지는 대충 알겠거든. 근데 그걸 확인하는 순간 그 애가 설명을 해야 하잖아. 설명하고 싶었으면 진작 했을 거고.
우리 방은 안 물어보는 걸로 굴러가는 방이라니까. 그게 편해서 다들 여기 오는 거고.
달력을 넘기면 그 장은 뒤로 넘어가서 안 보이잖아.
물건은 그대로 있는데 안 보이게 되는 거지. 그러면 그 달에 있었던 일도 같이 넘어간 것처럼 되고. 아직 안 끝난 사람한테는 그게 좀 야박한 거더라.
그래서 우리 방은 달을 늦게 넘긴다. 그 애가 넘길 준비가 되면 그때 넘기는 거고, 그때까지는 벽에 그냥 걸려 있는 거야.
나는 종목도 모르고 그 동그라미가 무슨 날인지도 모르는 애다. 알 생각도 없고.
근데 언젠가 그 애가 그걸 넘길 거잖아. 그날 나는 아무 말도 안 할 거야. 봤다는 티도 안 낼 거고.
돈은 몰라도 마음은 같이 봐줄 수 있다니까. 아직 안 넘긴 달이 있으면 그거 천천히 넘겨라. 동아리방은 안 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