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동에 사는 언니가 있어요. 저보다 열 살이 많지요.
처음엔 엘리베이터에서 인사만 하던 사이였어요. 그러다 분리수거 날 몇 번 마주치며 얘기를 나누게 됐고, 지금은 가끔 서로 집에서 차를 마셔요.
처음엔 조금 조심스러웠어요.
열 살이면 꽤 큰 차이니까요. 말을 놓아도 되는지, 무슨 얘기를 해야 할지 몰랐지요. 그런데 몇 번 만나다 보니 그게 상관없어지더라고요. 좋아하는 게 비슷하고 대화가 편했어요. 나이보다 결이 맞는 게 더 중요했던 거군요.
얼마 전 언니 집에서 제 고민을 털어놨어요.
회사 일, 앞날에 대한 막막함 같은 거요. 언니는 끝까지 다 들어주더라고요. 그리고 조언 대신 이렇게 말했어요. 나도 네 나이 때 딱 그랬어. 그러고는 귤을 까서 반을 건네줬지요.
먼저 그 길을 걸어본 사람의 '나도 그랬어'는, 어떤 조언보다 길게 남는다.
그 한마디가 이상하게 큰 위로가 됐어요.
해결책을 준 건 아니었지요. 그런데 언니도 그 시기를 지나왔고, 지금은 이렇게 웃으며 귤을 까고 있다는 게 보였어요. 그 자체가 답이었던 것 같아요. 지나갈 거라는 걸 말 대신 보여준 거니까요.
언니를 보면 십 년 뒤의 저를 상상해보게 돼요.
언니는 혼자서도 단단하게 사는 사람이에요. 베란다에 화분을 가득 키우고, 주말엔 혼자 영화를 보러 가지요. 그 모습이 좋아 보였어요. 나이 드는 게 조금 덜 무섭게 느껴지더라고요.
쇼펜하우어는 같은 괴로움을 아는 사람끼리 서로 덜 외롭게 한다고 했대요.
언니와 저는 같은 시기의 괴로움을 다른 시간에 겪은 사람들이었지요. 그래서 말이 통했던 것 같아요. 나이 차이는 오히려 다리가 되어주었고요.
나보다 먼저 같은 길을 걸어본 사람의 '나도 그랬어'는 어떤 조언보다 큰 위로 같아요.
그런 사람이 곁에 있다면 오늘은 차 한잔 청해봐도 좋겠는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