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도에서 칼손이랑 걷는데 다른 반 애가 칼손한테 말을 걸더라.
"야, 너 요새 물렸다며? 개미 됐네, 개미."
그 애는 웃으면서 지나갔어. 같이 있던 애들도 웃었고. 칼손도 웃었어.
근데 나는 칼손 손을 봤거든.
칼손 하하, 그러게.
칼손 손에 우유팩이 있었어. 마시던 거.
웃으면서 그 우유팩을 천천히 찌그러뜨리고 있더라. 아주 천천히. 본인은 모르는 것 같았어.
그 애들이 지나가고 나서 칼손이 우유팩을 쓰레기통에 넣었어. 반도 안 마신 거였어.
그거 보고 알았지. 칼손은 하나도 안 웃겼던 거야.
동아리방에서 칼손한테 물어봤어. 왜 같이 웃었냐고.
칼손이 그러더라. 안 웃으면 분위기 깨는 애가 되잖아. 장난인데 정색하면 이상한 애 되고.
그래서 웃었대. 근데 웃는 동안 속이 쓰렸대. 진짜 힘든 걸 남이 웃음거리로 만드니까.
그 애는 몰랐을 거야. 장난이었으니까. 그게 더 서운하대.
불나방 다음에 걔 보면 내가 한 마디 해줄까?
생각해보면 장난이랑 상처는 종이 한 장 차이잖아.
같은 말이라도 괜찮은 날 들으면 웃기고, 힘든 날 들으면 아파. 하는 사람은 그 차이를 모르고.
그러니까 장난친 애가 나쁜 건 아닌데 칼손이 아픈 것도 진짜인 거라니까. 둘 다 맞는 거야.
돌부처 웃는 거랑 괜찮은 거는 달라.
나는 그날 하나 배웠어. 웃으면서 받아주는 애가 괜찮은 게 아닐 수도 있다는 거.
칼손은 남 눈치를 제일 많이 보는 애잖아. 그러니까 아파도 웃는 거야. 분위기 지키려고.
그런 애일수록 누가 손을 봐줘야 하는 거라니까. 우유팩 찌그러뜨리는 손.
그날 저녁 칼손한테 우유 하나 새로 사줬어. 아무 말 없이.
너도 장난인데 하나도 안 웃겼는데 같이 웃었으면, 그거 네가 속 좁아서 그런 거 아니야.
아픈 건 아픈 거야. 동아리방에서는 우유팩 찌그러뜨려도 아무도 안 놀린다니까.